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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④
옛 영광 못 잊는 역사의 주인 ... 무기력하게 고사해가는 풍경
시칠리아와 대구, 닮아 있어 ... 쇠락했지만 주류 정통성 고집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배경 오하이오주州의 몰락한 작은 촌락 ‘노컴스티프’. 마찬가지로 활력을 잃고 쇠락한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콜 크릭(Coal Creek·탄광촌)’. 두 곳은 ‘왕년’에 한때 미국 최고의 부를 누리고 미국의 심장이었던 지역들이다. 

 


그러나 1940년대 미국의 ‘전기혁명’을 뒷받침했던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과 1960년대 미국의 ‘철강혁명’의 심장이었던 오하이오의 철강도시들은 석유의 본격 개발에 이은 철강산업의 쇠퇴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이 영화는 영화적 장르를 ‘남부 고딕(Southern Gothic)’이라고 못 박고 있다. 문학에서 ‘고딕’이란 단순히 유령이 나오는 괴기담이 아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역사의 주인이 몰락해 가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옛 영광을 잊지 못한 채 먼지 쌓인 대저택 안에서 무기력하게 고사枯死해가는 음산하고도 기괴한 풍경을 의미한다.

지금은 ‘러스트 벨트’로 통칭되는 영화에 등장하는 오하이오의 쇠락한 공장지대와 버려진 탄광지대에 남아 살아가는 영화 속 인물들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외부에 대한 경계와 폐쇄성 속에서 기적을 향한 광적인 기도에만 매달린 채 고사해가고 있다. 

콜 크릭 마을의 목사는 ‘부활의 기적’을 증명하겠다고 자기 아내 목을 드라이버로 찔러 죽이고 ‘부활’의 기도를 올린다. 그 광기를 피해 콜 크릭에서 노컴스티프로 이주한 주인공 윌러드는 외지인을 배척하는 주민들 틈에 섞이지 못하고 언덕 위 외딴집에서 새 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고, 교회도 나갈 수 없어서 숲속에 혼자만의 ‘기도터’를 마련하고 예배를 본다. 

주인공의 아내가 말기암에 사경을 헤매도 주민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물론 의료시설도 없다. 그렇게 절망 속에 기도에만 매달리던 윌라드는 아내가 죽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남부 고딕이라는 문학적 장르를 확립한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1925~1964년)의 단편들에 나오는 남부인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가난이나 왜곡된 종교관을 고치려 드는 북부식 계몽주의자들을 격렬하게 거부한다. 그들에게 변화란 자신들의 본질을 부정하라는 모욕과 같았기 때문이다.

남북 전쟁 직후, 북부에서 남부의 재건과 개혁을 위해 내려온 이들을 남부인들은 ‘카펫자루를 든 장사꾼(카펫배거·Carpetbagger)’이라 부르며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그들이 가져온 근대적 법률, 평등, 자본주의 시스템을 남부인들은 ‘우아한 남부의 전통을 더럽히는 천박한 농간’으로 치부했다.

미국에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한 남부 고딕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또 다른 ‘시칠리아 고딕’이 있다. 왜 ‘시칠리아’가 마피아의 대명사가 됐는지 알 수 있는 고딕이다.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아우르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왕국은 한때 가장 번영했지만 이탈리아 통일 이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 돼버렸다. 대책 없는 사람들이 몸담을 곳은 ‘마피아’밖에 없게 됐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1896~1957년) 소설 「표범(Il Gattopardo)」은 이탈리아 남부의 몰락 과정을 그려낸 ‘국민 소설’이다.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변화의 소용돌이(1865~1870년) 속에서 가리발디(Garibaldi)의 혁명군에 가담한 시칠리아 왕국의 공작 살리나(Salina)의 조카 탄크레디(Tancredi)는 과거의 영광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삼촌이자 공작인 살리나를 설득한다.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If we want things to stay as they are, things will have to change).” 혁신을 외칠 때면 항상 등장하는 소위 ‘람페두사(Lampedusa’ Principle)의 법칙’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는 살리나 공작은 조카 탄크레디와 새 정부 관료들에게 일관되게 대답한다. “시칠리아인들은 변화를 원치 않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깊은 잠에 빠지는 것’뿐이지. 그들은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믿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자를 증오하네.”

살리나 공작은 이어서 ‘깊은 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한다. “그들이 원하는 잠은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일세. 그들은 그 잠을 깨우려는 자를 철저히 증오하지… 그들이 말하는 옛 영광, 예술, 풍광… 이 모든 것은 사실 그들을 ‘기분 좋은 마비와 망각상태(voluttuosa letargia)’로 밀어넣기 위한 도구일 뿐이네.” 영미권 비평가들은 이 ‘기분 좋은 마비와 망각상태’를 ‘Sicilian stupor(시칠리아적 인사불성)’라는 주석을 달아 분석한다.

얼마 전 무려 4000조원이란 자금이 투입된다는 정부와 반도체 대표기업들의 ‘메가 프로젝트’에서 경북과 대구가 소외돼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 대구 시장을 지낸 ‘TK’의 유력 정치인이 ‘고담 대구’라는 멸칭까지 동원해가며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의 심장’ 대구를 직격해 시끄럽다.

언뜻 TK가 과거의 정치적 패권과 산업화의 중심지였다는 ‘옛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변화를 거부하고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들린다. 그런 의미라면 고담 대구라는 말보다는 과거의 영광에만 매몰돼 기괴한 쇠락에 빠진 미국의 남부 고딕이나 시칠리아 고딕처럼 대구 고딕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통일 이전 시칠리아 왕국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부유했듯, 그리고 미국 남부가 건국 초기의 대통령들을 무수히 배출하고, 변화 사치품으로 영광을 누렸듯, TK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 근대화의 심장이자 주류 엘리트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수십년째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경제적 물리적 에너지는 고갈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탈출하며, 도시는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대책 없이 쇠락해가는 미국의 남부나 이탈리아의 남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은 쇠락해가고 있는데, 정신은 여전히 주류의 정통성을 고집하는 이 거대한 인지부조화야말로 가장 고딕(Gothic)적인 징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노자는 ‘도덕경’ 2장에 ‘위이불시 공성이불거爲而不恃 功成而不居(만물을 기르되 소유하려 들지 말고, 공을 이뤘으면 그 자리에 머무르지 말라), 부유불거 시이불거夫唯不居 是以不去(오직 그 자리에 머물지 않기에, 그 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라는 말을 남긴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9장에서 다시 ‘공성신퇴 천지도攻城身退 天地道(공을 이뤘으면 몸을 빼는 것, 이것이 하늘의 도리다)’라고 흘러간 영광을 붙들고 늘어지지 말라고 재차 당부한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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