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대표하는 산업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귤과 관광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제주 경제는 오랫동안 감귤과 관광산업이 이끌어 왔습니다. 제주를 상징하는 이미지 역시 감귤밭과 푸른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주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품목은 감귤이 아닙니다. 반도체입니다. 놀랍게도 올해 들어 제주 수출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제주의 누적 수출액은 미화 3억5478만 달러.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액 3억4039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5개월 만에 지난해 1년 실적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제주의 반도체 수출액은 2억5537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수출의 70% 안팎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규모입니다.
'감귤의 섬' 제주가 어느새 '반도체의 섬'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제주에 삼성전자 공장이 있나요?,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나요?, 반도체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 수출 1위가 반도체가 됐을까요? 답은 '제주반도체'라는 기업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반도체를 제주에서 창업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제주반도체의 시작은 경기도 성남입니다. 2000년 설립된 반도체 설계회사 EMLSI가 제주반도체의 전신입니다. 당시만 해도 제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전환점은 2005년이었습니다.
EMLSI는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기업 이전 지원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본사 이전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결국 직원 투표를 통해 제주 이전이 결정됐고, 회사는 본사를 제주로 옮겼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 첨단산업 기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2013년에는 회사 이름도 제주반도체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주 수출의 역사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반도체 회사라면서 왜 제주에는 공장이 없을까요? 제주반도체는 '팹리스(Fabless)'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팹리스는 생산공장이 없는 반도체 회사를 말합니다.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와 개발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제주반도체가 설계한 반도체는 대만 등 해외 파운드리 업체에서 생산됩니다. 제주에서는 설계하고, 생산은 해외에서 하고, 판매는 전 세계로 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공장이 없어도 수출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올해 제주 반도체 수출의 대부분은 홍콩으로 향했습니다. 홍콩 수출액만 2억1778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대만과 베트남도 주요 수출시장입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거대 기업도 있는데 제주반도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정답은 틈새시장입니다.
제주반도체는 AI 서버용 초고성능 메모리가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통신모듈, 차량용 통신장비 등에 들어가는 저전력 메모리를 집중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시장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경쟁이 덜한 분야였습니다. 그 결과 유럽과 중국, 대만 등 해외시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근 AI와 사물인터넷 산업이 성장하면서 관련 수요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1804억원, 영업이익 671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주 수출 구조도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제주 수출 순위를 보면 감귤과 넙치 같은 농수산물이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반도체가 압도적인 1위입니다. 제주 수출 10달러 가운데 7달러 가까이가 반도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제주 수출 품목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항공기 부품이 대표적입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실상 수출 실적이 없던 품목이었지만 올해 들어 5039만 달러를 기록하며 단숨에 제주의 주요 수출품으로 떠올랐습니다. 의약품 수출도 늘고 있습니다. 보톡스를 포함한 의약품 수출액은 446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물론 최근에는 이라크 시장까지 진출했습니다. 물론 제주의 전통 수출 품목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넙치는 올해 1124만 달러를 수출하며 미국과 일본을 넘어 동남아 시장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제주산 돼지고기와 소고기 역시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주 수출은 더 이상 감귤과 농수산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감귤이 밀려난 이유는 감귤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도체와 첨단산업이 너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감귤은 생산량과 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반도체는 전 세계를 상대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수백억원 규모였던 기업이 수천억원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제주 수출 지형 자체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사실 제주반도체가 본사를 제주로 옮긴 지는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조용히 성장해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주 경제는 중요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감귤과 관광만으로 설명되던 제주 경제에 첨단산업이라는 새로운 축이 생긴 것입니다.
제주도는 올해 수출 목표도 기존 3억8000만 달러에서 6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릅니다. 제주 수출 1위가 감귤이 아니라 반도체라는 사실. 어쩌면 제주가 변하고 있다는 가장 상징적인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잠깐만요. 우리는 아직도 제주를 감귤의 섬이라고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의 제주에는 감귤밭과 푸른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옆에서 세계 시장을 향해 반도체를 설계하고, 항공기 부품을 수출하고, 의약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제주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