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관광시장이 낯선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고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위축된 관광 수요를 살리기 위해 마련한 여행지원금 사업은 시행 7일 만에 예산 7억6000만원이 모두 소진됐다. 제주공항 환대부스에는 연일 관광객이 몰렸고 3만여 명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시기 제주 관광과 지역경제 지표는 오히려 추락했다.
관광객은 줄고 소비는 위축됐으며 물가는 상승하고 있다. 제주경제를 지탱해온 관광산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행 수요는 살아있는데 관광객은 감소=지난 11일 제주도관광협회 집계결과 지난달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21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감소했다.
외국인 관광객은 3만5000명 증가했지만 내국인 관광객은 7만3000명 줄었다. 감소세는 6월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16.8%, 4만4000명 감소했다.
반면 관광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지난 4일부터 시행한 여행지원금 사업은 당초 이달 말까지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관광객이 몰리면서 일주일 만에 종료됐다.
제주 디지털 관광증 ‘나우다(NOWDA)’ 가입자를 대상으로 2박 이상 체류 시 탐나는전 2만~5만원을 지급한 사업으로, 관광객들의 참여 열기는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관광객 감소와 지원사업 조기 종료가 동시에 나타난 것은 제주 관광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실제 여행 결정 방식이 달라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주보다 먼저 계산하는 여행 경비=최근 제주 관광시장의 가장 큰 변수는 비용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발표한 ‘최근 제주지역 실물경제 동향’에 따르면 유류할증료는 4월 7700원에서 5월 3만4100원으로 급등했다. 국내항공료 상승률도 5월 기준 25.9%를 기록했다. 제주공항 국내선 편수는 3월 513편 증가에서 4월 343편 감소, 5월 97편 감소로 전환됐다.
제주공항 도착 공급석도 1~2월 15.0%, 3월 10.7% 증가했지만 4월 -6.8%, 5월 -3.3%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과거 제주 관광시장의 관심사는 증편이었다. 얼마나 많은 좌석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관광객들은 항공권과 숙박비, 렌터카 비용을 모두 합산해 여행 경비를 계산한다. 예전에는 제주 여행을 먼저 결정한 뒤 비용을 따졌다면 이제는 비용을 먼저 따진 뒤 목적지를 선택한다.
◆제주와 일본·대만이 경쟁하는 시대=관광업계가 체감하는 변화도 비슷하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제주와 일본, 대만, 동남아 단거리 해외여행을 함께 비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후쿠오카와 오사카, 타이베이, 다낭 등이 제주의 경쟁 상대가 됐다.
제주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주를 잘 아는 여행객들이 가격과 만족도를 더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관광업계에서는 제주가 ‘무조건 가는 여행지’에서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관광 둔화가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관광시장 변화는 지역경제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에 따르면 4월 대형마트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보다 6.0% 감소했다.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율도 3월 3.8%에서 4월 1.6%로 둔화됐다. 도민 소비가 위축된 데다 관광객 소비 증가폭도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4월 94.5까지 떨어졌다가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과 중동전쟁 종전 협의 기대감 등의 영향으로 5월 101.8로 반등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용시장 역시 증가세는 유지했지만 힘은 약해졌다. 5월 취업자 수는 41만6000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명 증가했지만 4월 증가폭인 1만4000명보다는 줄었다. 특히 서비스업 취업자는 4000명 감소하며 감소폭이 확대됐다.
관광산업 둔화의 영향이 서비스업 고용시장으로 번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물가는 31개월 만에 최고 수준=관광 둔화 속에서도 물가는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제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를 기록했다. 제주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은 것은 2023년 10월 이후 31개월 만이다.
석유류 가격 상승률은 20.5%까지 치솟았고 개인서비스 물가는 항공료를 중심으로 3.5% 상승했다. 농축수산물 가격도 5.2% 올랐다.
관광객은 줄고 소비는 둔화됐지만 생활비 부담은 더 커지는 이중 압박이 제주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셈이다.
◆정책 지원은 하는데=제주도는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과 관광 활성화 정책으로 충격 완화에 나서고 있다.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지난 4월 말부터 지급돼 6월 7일 기준 914억원이 집행됐고 이 가운데 663억원이 실제 사용됐다.
또 민선 9기 도정은 3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준비하고 있다.
관광 분야에서는 탐나오 할인쿠폰과 나우다 상시 할인, 농어촌민박 한달살이 지원, 다자녀 관광객 지원 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5일부터는 고향사랑기부제와 연계한 ‘얼리버드 여행지원 이벤트’도 실시한다. 제주에 10만원 이상 기부하면 추첨을 통해 탐나는전 1만원을 지급하고, ‘탐나는 제주패스’를 통해 관광지 할인과 한라산 탐방 혜택도 제공한다.
홍성화 제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여행지원금 조기 소진은 제주 관광 수요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만, 가격 지원 없이는 여행을 망설이는 시장으로 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단기 처방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타당한 정책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관광객 유치 지원금만으로는 구조적인 변화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항공 접근성 개선과 체류형 콘텐츠 확충, 가격 경쟁력 강화 등 제주 관광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