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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중인 제주의료(하)] 잇따른 분만실 폐원 예고 ...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능사?

제주 의료의 위기는 손가락을 잇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제주에서 가장 많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던 분만실 하나가 문을 닫게 됐다.

 

◆제주 출생아 4명 중 1명이 태어난 분만실의 폐원 = 제주시 일도2동 서해산부인과의원이 오는 8월 말 폐원을 예고했다. 1999년 개원 이후 27년 동안 제주지역 대표 분만 의료기관 역할을 해온 병원이다. 올해 1분기에만 이곳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237명이다.

 

같은 기간 제주 전체 출생아의 25.6%에 해당한다. 제주에서 태어난 아기 4명 중 1명은 이 병원에서 태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 분만실의 불도 곧 꺼진다.

 

김경민 대표원장은 최근 입장문에서 "동료 원장과 둘이서 365일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졌다"며 "체력적·정신적 한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분만 후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독했던 산모가 종합병원 전원을 거부당해 본원 수술실에서 6시간 동안 응급처치를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며 지역 분만의료의 현실을 토로했다. 결국 병원이 문을 닫는 이유도 환자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이를 받을 의사가 부족하고, 응급상황을 감당할 의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현재 제주시에서 분만실과 신생아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원은 5곳이다. 서해산부인과가 폐원하면 4곳으로 줄어든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위험 산모를 감당할 의료체계다. 현재 제주에서 신생아중환자실을 갖추고 고위험 임산부 분만이 가능한 곳은 제주대병원이 사실상 유일하다. 지난 1월에는 조기양막파열 증세를 보인 임신 30주 산모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소방헬기로 이송되던 중 기내에서 출산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손가락이 잘리면 비행기를 타야 하고, 응급 산모 역시 하늘길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 제주 의료의 구조적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해답이 될 수 있을까 = 최근 제주대병원과 제주한라병원이 상급종합병원 지정 경쟁에 뛰어들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 치료 역량과 환자 안전 체계를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이다. 그동안 제주도민들은 암과 심혈관질환, 중증외상 등 고난도 치료를 위해 서울과 부산, 광주를 오가야 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지정되면 제주에서도 상당수 중증 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 지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제주도의회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조민우 울산대 의과대학 교수는 "제주 의료는 중증질환 치료에서 역외 의존도가 높은 구조"라면서도 "환자 규모와 의료 인력 확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인 강성수 일산차병원 교수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상급종합병원 지정도 필요하지만 공공의료 투자와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육지처럼 바로 움직일 수 없다"며 "기상 악화로 항공 이송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형근 제주대병원 공공의료부원장은 "지역 완결형 의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고, 안성희 제주도 보건정책과장은 "환자 쏠림과 의료비 상승 우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보다 더 부족한 것은 사람과 시스템 = 결국 제주 의료의 문제는 단순히 병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사가 부족하고, 전문의가 부족하고, 분만 인력이 부족하고, 응급체계가 부족하다. 관광객 1500만 명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손가락 하나 제대로 잇지 못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분만실조차 줄어드는 현실은 여전하다.

 

파쇄기에 손이 끼인 농민, 전동가위에 손가락이 잘린 작업자, 고위험 임산부, 중증외상 환자들이 닥터헬기와 항공편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섬. 그것은 단순한 의료 공백이 아니라 제주 사회가 외면해 온 필수의료의 경고음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분명 제주 의료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출발선 위에는 전문 의료인력 확보와 응급·분만 의료 체계 구축이라는 더 큰 과제가 놓여 있다.

 

제주가 진정한 의료자립을 말하려면 상급종합병원이라는 간판보다 먼저 도민의 생명을 지킬 사람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손가락 하나를 잇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섬. 아이를 낳을 분만실마저 하나둘 사라지는 섬. 그것이 지금 제주 의료가 마주한 민낯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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