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시골마을에서 자란 소녀가 있었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작문 시간마다 남다른 상상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던 문학소녀였다. 부모와 선생님의 말씀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자란 모범생.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주의 첫 민선 여성교육감으로 등극한 고의숙 당선인(57).
제주도민들은 제주 교육의 새로운 변화를 선택했다. 단순한 교육 수장 교체가 아니었다. 제주 교육계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유리천장이 마침내 깨진 역사적 순간이었다.
고의숙 당선인은 1969년 9월 11일 제주 서귀포시 천지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제주를 떠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꿈도 품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좋아하던 글쓰기를 포기하고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회상했다. 1987년 서귀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같은 해 제주교육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은 단순한 학창생활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1987년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대학가를 뒤덮던 시기였다.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6월엔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피격, 생을 마감하던 시기였다.
그 암흑의 시기 캠퍼스 복도에서 한 선배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을 열기 위해 붙인 대자보가 철거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충격이었다.
"울면서 진실을 알리고 싶다고 외치던 선배의 모습이 저를 관통했습니다."
그 사건은 모범생이었던 고의숙의 삶을 바꿔놓았다. 교육은 교실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갈 사회 전체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989년 그는 제주교대 총학생회장에 선출됐다. 학생 동아리실 설치와 학생 자치 활성화 운동을 이끌며 학교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당시 제주대·제주교대·제주간호전문대·제주전문대 등 4개 대학이 함께 결성한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기도 했다. 제주지역 대학생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선 것이다.
훗날 그는 "좋은 교사는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1년 서귀포 보목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직 생활이 시작됐다. 30년 넘는 교육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유독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마음이 갔다. 초임 시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석이 잦던 학생을 찾아가 가정방문을 했던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마을 외곽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아이였다.
고 당선인은 그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훗날 성인이 된 그 학생이 "선생님"이라고 찾아왔을 때 교직 생활의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 정책실장과 사무처장을 맡으며 교육운동에도 참여했다. 2009년 전교조 제주지부 사무처장 시절에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징계와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학생들이 경쟁 교육에 지쳐가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교육전문직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제주도교육청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로 근무하며 교육행정 경험을 쌓았다. 제주형 자율학교 정책을 담당했고, 제주 최초 국제교육심포지엄 기획, 교육리더십 혁신 연수 프로그램 운영 등을 주도했다.
2017년에는 핀란드 교육리더십 연구과제 수행을 위해 현지 연수에 참여하며 선진 교육 시스템을 직접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이 시기를 두고 "비판하던 입장에서 책임지는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고의숙 당선인은 이후 남광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했다. 학교 운영과 교육행정을 총괄하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교직 생활에 머무르지 않았다.
2022년 정년을 10년 남겨둔 상태에서 교감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교육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주변에서는 만류도 적지 않았다.
당시 교육의원 선거는 남성 중심 구조가 강했고 여성 교육전문가의 정치 진출 사례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선택했다.
그 결과 2022년 6월 1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제주시 중부선거구 교육의원에 당선됐다.
제주 민선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교육의원이었다.
지역 정가에서는 오래전부터 고 당선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특히 배우자인 강경식 전 제주도의원이 제주시 이도2동갑 선거구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던 시절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고 당선인이 유세 현장에 함께 나서 주민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이 들려왔다고 한다. "강경식 후보보다 고의숙 선생님이 더 낫네", "말도 잘 하는게 저 사람은 나중에 교육감 할 사람 같아"
당시에는 덕담처럼 들렸지만 그게 현실이 됐다.
2026년 그는 제주도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한 명 한 명을 포기하지 않는 교육,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을 만들겠습니다."
상대는 현직 교육감인 김광수 후보였다. 선거 초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고 후보는 열세를 보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김광수 교육감의 무난한 재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선거판이 달아오를 수록 분위기는 달라졌다. 고 후보는 교권 회복, 학생 심리·정서 지원, 학력 격차 해소, 교육복지 확대 등을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교육 현장 경험을 앞세운 메시지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선거 막판에는 "안정이냐 변화냐"라는 구도가 형성됐다. 그리고 도민들은 변화를 선택했다.
당선 직후 그는 "제주의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교사에서 교감으로,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로, 교육의원을 거쳐 교육감까지.
1991년 처음 교단에 선 이후 35년 동안 이어진 교육자의 길은 제주 교육의 최고 책임자라는 자리로 이어졌다.
제주 최초 여성 교육의원, 제주 최초 여성 교육감 두 번의 '최초'를 기록한 고의숙 당선인의 여정은 곧 제주 교육의 변화 과정 그 자체였다.
오랫동안 교실을 지켰던 한 교사는 그렇게 제주 교육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게 됐다.
그리고 그 페이지의 첫 문장은 아마 이렇게 기록될 것이다. "아이들을 믿었던 교사가 결국 제주 교육의 미래를 맡게 됐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