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환경운동의 초석을 다지는 등 숱한 족적을 남긴 언론인 신상범 제주중앙언론인회 고문이 24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고인은 한국일보·경향신문을 거쳐 1965년 중앙일보 창간에 맞춰 특기생으로 입사했다. 제주주재 기자로 활동하며 제주사에 기록될 숱한 특종과 역사를 만들어냈다.
중앙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1960년대 중후반 박정희 정권에 의해 한라산 케이블카 도입이 기정사실화되자 그는 기사로 그 부당성을 알렸다. 케이블카 정류장이 예정된 성판악·영실·1100고지 휴게소 등이 예정대로 개발이 착착 진행되자 그는 새로운 반격에 나섰다.
중앙일보 기자이자 한국자연보전협회 제주지부장 자격으로 당시 한국자연보전협회 총재인 육영수 여사에게 서신을 보냈다. 그의 예상대로 휴게소만 설치되고 케이블카 계획은 전면 백지화됐다. “민족의 영산에 철탑을 세워선 안된다”는 그의 논리가 먹혔다.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한라산 케이블카 개발 논란의 시초격이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강제해직의 수모를 겪기도 했던 그는 주류도매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언론계 입문 때부터 손에 쥐던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제주카메라클럽을 태동시킨 장본인이 바로 그다.
노태우 정부 출범 뒤 중앙일보에 복직한 그는 1993년 사회부장 직위로 퇴직하고 나서 제주에선 첫 사단법인 민간 환경연구단체인 제주환경연구센터를 설립,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제주의 환경자산에 대한 그의 애착은 쉼이 없었다.
1999년 말 세계서 보기드문 이중분화구 화산체인 제주의 대정읍 송악산이 레저타운 개발사업으로 송두리째 파헤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다시 분연히 일어섰다. 전국 방방곡곡 지질학자들의 반발을 이끌어내고 각계 인사들과 송악산녹색연대를 창립, 개발도정에 맞서기도 했다.
문화에 대한 식견을 갖추는 한편 후진양성도 늘 그의 일이었다. 한국예총 제주도지회장·중앙이사, 제주도미술대전 초대작가, 한라문화제 집전위원장, 제주문화원장을 역임했다. 2018년엔 그런 공로로 제주도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수차례의 개인 사진전을 여는 등 사진작가로서의 역량만이 아니라 말년에 이르러 수필과 시에도 연이어 등단한 그는 지난해 4월 전국문학인 꽃축제에서 한국꽃문학상을 수상했다. 시 '할미꽃'이 수상작이다.
할미꽃
언덕에서 만난 할미꽃
머리에 흰 수건 쓰고
밤낮없이 엎드려 일하던
내 할머니 같아 덥석 꺾었다
철부지였던 어느 날
봄바람 포근한
산 밑에서 손을 펴보니
그사이 축 늘어져 버린 꽃
나의 기쁨이 꽃에게는 죽음이 되었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다시 꽃이 될 수 없는 할미꽃
다시 못 올 할머니.
유족으론 신용운씨 등 3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제주시 혼길장례식장. 입관은 25일 오전 11시, 일포는 26일, 발인은 27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제주시 봉개동 명도암 선영이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