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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장미의 이름⑨
교회 기득권 수호한 요한 22세 ... 교회법학에 정통한 법기술자
청빈 외치는 수도회 탄압 … ‘무소유=이단=악마’ 주장

영화 ‘장미의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베네딕토 교단 수도원에서 교황청이 벌이는 아수라장을 보여준다. 이단 재판이 열리고, 엉뚱한 민초들이 ‘악마’로 몰려 화형당하고 그사이에 중세 지식의 요람인 수도원 장서각은 불탄다. 하지만 아수라장을 설계하고 총감독한 ‘최종 빌런’은 영화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사건을 쥐락펴락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196대 교황 요한 22세(Joannes XXIIㆍ1225~1334년ㆍ재위 1316~1334년)다. 영화 속에 험악한 모습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호르헤(Jorge) 수도사나 이단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Bernardo Guido) 모두 요한 22세가 흔드는 실에 매달려 있는 꼭두각시들일 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372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내 급진파(Spiritualsㆍ영성파)들은 ‘예수와 사도使徒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앞세워 당시 교황청의 사치와 부패를 공격한다. 이들은 교회의 부와 권력을 비판하며 극단적인 무소유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과 요구대로라면 교황청은 당장 문 닫아야 할 궁지에 몰린다. 

이 위기 상황에서 교회가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옹립한 인물이 바로 요한 22세다. 요한 22세는 교황청 역사에서 보기 드문 세속 사제(secular clergy) 출신으로 ‘종교적 가치’보다는 교회법학에 정통한 행정통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법기술자’란 건데,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 대혼란기에 비판세력(프란치스코 교단)을 때려잡으라고 최고 권력에 옹립된 인물이다.

당연히 그의 치세는 ‘청빈’을 외치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탄압하는 것으로 점철된다. 「장미의 이름」은 요한 22세라는 실제 역사적 인물이 주도한 ‘청빈 논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기호철학자 에코가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수도원 살인사건’을 정교하게 배치한 ‘팩션(factionㆍfact+fiction)’ 작품이다. 

1323년 요한 22세는 교회사와 법제사法制史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Cuum inter nonnulls(몇몇 사람들 사이에)’라는 제목의 교황령(Decretal)을 반포한다. 어지간히 두툼한 세계사 책이라면 빠지지 않고 기록되는 교황령이다.

교황령은 곧 법이다. 이 교황령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당시 중세를 뒤흔들었던 개혁적인 청빈 논쟁에 결정적인 반격을 시도한 반동反動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 1호쯤 되겠다. 이 교황령 제목을 직역하면 ‘몇몇 사람들 사이에…’가 되겠지만, 그 내용은 ‘지금 교회 일각에서… 일부 몰지각하고 불순한 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소유와 청빈이라는 이런 위험한 소리들을 하는데…’의 의미다. 우리가 권력자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그 표현의 창시자가 바로 요한 22세다.

 


영화 속에서 수도원에 들이닥친 당대 최고의 이단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Bernardo Guido)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윌리엄 수도사를 이단심판정에 세우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무소유’ 주장을 이렇게 깨버린다.

“만약 예수님이 소유권이 없었다면, 그가 빵을 먹은 행위는 ‘남의 것’을 훔친 것이 되느냐? 예수님이 도적질했다는 말이 아니냐?” 이런 극단적인 ‘법기술자’의 논리로 당대 최고의 개혁적 논객 윌리엄 수도사도 쩔쩔매게 만든다. 

‘교황청의 사치=이단’이라는 공격을 ‘무소유=이단’으로 한순간에 프레임 전환을 한다. 마치 ‘평등과 분배’의 주장에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반국가’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같은 기술이다. 이 역시 요한 22세가 반포한 ‘Cuum inter nonnulls’에 포함된 논리다.

특히나 요한 22세를 ‘역사적인 인물’로 만들었던 것은 1326년 교황령 ‘Super Illius specular(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를 반포해 이단의 범주에 ‘마법(Witchcraft)’까지 포함시켜 그 이후 중세유럽에 ‘마녀사냥’의 합법적 기초를 마련한 공로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는 민간 신앙 정도로 치부되던 행위들이 이단 심판의 대상이 됐고 이는 훗날 유럽을 피로 물들이게 된다. 긴급조치 2호쯤에 해당한다.

여기에 이르면 ‘무소유=이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소유=이단=악마’라는 마법의 논리가 완성된다. 무소유의 주장은 신학적 오류 정도가 아니라 ‘악마의 소리’가 돼버린다. 당연히 무소유를 주장하면 ‘파문’ 정도가 아니라 악마를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인 ‘화형’이 적용된다.

영화 속 마을에서 몸 팔아 살아가는 소녀에게 검은 고양이 사체를 ‘화대’로 들고 간 지적신체적 장애자인 ‘민초’ 살바토레가 난데없이 화형대에 묶인 배경이다. 영화 배경이 1327년이니 바로 1년 전인 1326년 반포된 교황령 ‘긴급조치 2호’에 의해 화형당한 아마도 1호 희생자일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정치에서 걸핏하면 ‘마녀사냥’ 논란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이 요한 22세다.

 


움베르토 에코가 1372년으로부터 600년이나 흐른 1980년에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요한 22세 치세의 중세유럽 교회의 광기를 다시 소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대는 양극단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극단적으로 경직돼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악마’라고 부르짖던 불온한 시대였다. 양극단으로 갈린 세계가 서로가 서로에게 ‘악마’의 이름표를 붙여주던 시대다.

지방선거가 다가온 모양이다. ‘좌파=북한=악마’라는 해묵은 마법의 논리가 요란하다, 안타깝지만 또 다른 쪽에서 내지르는 ‘우파=내란=악마’라는 논리도 요한 22세의 마법의 논리이기는 마찬가지다. 좌파나 우파가 악마일 리 없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트럼프의 ‘전쟁반대=반국가=악마’의 논리가 광기를 내뿜는다. 물론 이란에서도 ‘정부비판=반역=악마’라는 삼단논법으로 수천~수만의 시민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모두 요한 22세의 사도使徒들이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원작 소설에서 수도원에서 벌어진 난장판의 ‘관찰자’ 역할을 맡은 움베르토 에코는 마지막에 ‘요한 22세를 끝으로 요한이라는 교황명을 사용한 교황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내레이션으로 요한 22세를 역사 속에 ‘봉인’해버린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 이후 교황들이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을 뿐, 그의 후예들은 다른 이름을 내걸고 ‘요한 22세’의 이단심판을 계속해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는 셈이다. 우리는 마치 ‘광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중세를 ‘암흑 시대(Dark Age)’로 지칭하지만, 어찌보면 우리는 여전히 ‘암흑’의 중세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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