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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56) 곶자왈, 얽히고 설킨 오래된 숲길에서의 사유①

-서인희 개인전 ‘바이오필리아’ 의 새로운 자연주의 미학

 

서양화가 서인희 개인전 ‘바이오필리아’가 2026년 3월 18일부터 4월 6일까지 인사동 서울제주갤러리에서 대작 20점을 선보이고 있다. 숲과 돌이 만나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생명의 땅, 제주 원시의 숲 곶자왈을 다시금 돌이켜보는 따뜻한 감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혼자 가는 숲길 인생

하이데거는 조용히 숲을 사유했다.

 

수풀(Holz, 林)은 숲(Wald)을 지칭하던 옛 이름이다. 숲에는 대개 풀이 무성히 자라나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들이 있다.

 

그런 길들은 숲길(Holzwege)이라고 부른다. 길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같은 숲속에 있다. 종종 하나의 길은 다른 길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 뿐이다.

나무꾼과 산지기는 그 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숲길을 걷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하이데거

 

그렇다. 우리는 숲길을 가는 사람처럼 자신들이 왜 그 길을 가는지 잘 알고 있다. 삶은 알면서도 가고, 알기 위해 가는 길이며, 이 삶의 길에서는 어느 날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된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 비록 그것을 내색하는 것이 서툴지라도 혼자일때 자신의 본질이 들여다 보인다.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가 무리에 끼어 있으면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른다. 혼자 있을 때 ‘내’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결국 시작도 혼자였고, 잠시 무리 속에 있다가 끝에도 혼자이기 때문이다.

 

헤세의 시는 인생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성찰로 다가온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많이 있다./그러나/도달점은 모두 다 같다.//말을 타고 갈 수도, 차를 타고 갈 수도,/둘이서 갈 수도, 셋이 갈 수도 있다./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혼자서 걸어야 한다.//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혼자서 하는 것보다/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헤르만 헤세 「혼자」 全文

 

우리는 인생에서 딱 두 번 알몸을 보인다. 처음에는 태어날 때 아기가 돼 부모에게 알몸을 보이고, 마지막에는 그 아기가 부모가 돼 자식에게 알몸을 보인다. 우리는 모두 두 번의 알몸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올 때 혼자서 왔다는 것을 안다. 당연하게 갈 때도 혼자이다. 인생길을 오고 가는 것이 오로지 자기가 하는 일이니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다. 존재의 진리라고 할까. 그렇지만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여전히 모른 채 우리는 간다.

 

플로티노스가 묻는다. “티네스 데 헤메이스(τίνεϛ ϭέ ήμεϊϛ)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존재는 혼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질레지우스도 고갱도, 김환기도 마지막까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나의 존재를 모른다.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이 궁금증에 대해서 “스스로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환경이 전부”이며, “우리가 태어나 놓이게 된 곳의 공간과 시간의 환경을 가능한 만큼만 알아내려고 한다”

 

바이오필리아와 곶자왈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생명 사랑이라는 말인데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명성이 높은 에드워드 윌슨( Edward Osborn Wilson, 1929~)의 대표적인 통섭 개념이다. 즉 바이오필리아 라는 말은 ‘생명(生命:Bio-)’과 ‘좋아함(好) 또는 호감성(好感性-philia)’의 조합어인데 윌슨은 “‘생명’과 ‘생명과 유사한 과정’에 가치를 두는 타고난 경향”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명에 호감을 보이는 성향이 있다. 인간도 자연의 태생인 만큼 어떤 생명에 이끌린다. 우리는 살아 있는 것들에게 호감과 관심을 보이며, 자연에서 편안함과 위안을 느낀다.

 

바로 생명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다. 이 바이오필리아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환경 보전에 대한 윤리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하는 개념이다. 서인희의 작업의 근간은 이 생명 사랑이라는 개념 아래 제주도 곶자왈을 바라보고 있다.

 

곶자왈은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지형으로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돌들이 널려있는 암괴지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수종의 숲과 덤불들, 온갖 새들과 양서류, 설치류 등이 어우러져 식생을 이루는 곳이다. 곶자왈은 원래 “곶+자왈”의 조합어이다.

 

곶은 한자로 ‘수(藪)’라고 하여 깊은 숲을 말하며, 곶, 또는 고지라고 하며, 숲을 일러 ‘술’이라고도 불렀다. 곶은 대규모로 형성된 암괴 지대에 나무, 덩굴이 어우러져 형성된 깊고 거친 큰 숲을 말하며, 술은 곶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위치·사람·수종(樹種)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전해온다.

 

 

옛 기록에 ‘수(藪)’는 제주 방언으로 곶(花)이라고 하며(藪彦作花), 15세기에 저술된『용비어천가』에, “곶은 꽃”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다시 말해 곶은 제주방언으로 숲이라 하고 발음은 곶(花)이고, 또는 고지(高之)라고도 했다.

 

그리고 자왈은 한 마디로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진 소규모의 숲“을 말하는데 2000년도 이전 까지만 해도 곶과 자왈이라는 두 단어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으나, 1997년 지질학자 송시태가 곶자왈이라는 개념으로 불렀고, 지역 일간지 제민일보가 이를 보도하는 바람에 오늘날의 ‘곶자왈’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로써 안타깝게도 곶과 자왈이라는 아름다운 두 용어가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곶자왈로 통용되고 먼저 이주민들에게 대중화되면서 토착민들도 차차 그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곶자왈이라는 용어가 진짜 전해오는 고유의 전통적인 언어인 것처럼 생각되나 실상은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의 용어인 것이다. 그러니까 곶자왈이라는 용어는 20여 년에 한 지질학자가 만든 개념이 언론을 통해서 재구성된 말이다.

 

언어의 역사가 그렇듯 단어도 새로 생겨나고, 변형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친다. 단어는 안 쓰면 사어(死語)가 되고, 필요하면 새로운 개념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곶자왈이 곶과 자왈이라는 단어가 조합돼 새로 생겨난 합성어 중 하나이다. 이는 곶자왈과 관련돤 파생어가 없는 것에서 신생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곶과 관련 있는 파생 명사를 보면, 곶돌(구들에 쓰는 아아용암 판석), 곶쉐(곶에서 놓아 기르는 소), 곶밭(곶을 밭으로 인식한 용어), 곶질(곶에 다니는 길), 곶낭(곶에서 캐온 나무, 삼동낭 등)이 있지만, 곶자왈쉐, 곶자왈돌, 곶자왈질, 곶자왈낭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던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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