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강경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이 원점에서 재검토된다.
국가보훈부는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이후 자격 요건과 절차 적정성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제기됐다”며 “관련 법령과 등록 과정 전반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법률 자문을 진행한 결과, 절차적 하자 보완을 위해 해당 사안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6일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으로 부임해 같은 해 6월 18일 부하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한 달여간 제주도에서 좌익 무장대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정부는 박 대령 암살 2년 후인 1950년 12월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보훈부는 지난해 11월 4일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증서를 유족에게 전달했다. 유족 측은 고인이 국가로부터 무공훈장을 수훈한 사실을 근거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한 바 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과 그 유족·가족을 예우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6조는 국가유공자 등록을 희망하는 경우 보훈부 장관에게 신청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령의 행적을 둘러싼 역사적 평가가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이어졌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진경 대령은 부임 이후 제주 중산간 마을을 대대적으로 수색하며 주민들을 체포했고, 당시 체포 인원은 3000명에서 최대 6000명에 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고서는 “한 달 사이 수천 명의 ‘포로’를 양산한 작전이 주민들을 산으로 내몰았고, 결국 본인의 암살로 이어지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서술했다. 또 박 대령의 참모였던 임부택 대위는 암살 사건 재판 과정에서 강경 진압 명령이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박 대령이 법률에 규정된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보훈부는 그간 무공수훈자에 대한 등록을 서훈 사실과 범죄 여부 확인 중심으로 처리해 왔다. 박 대령의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등록이 이뤄졌다.
법률 자문 결과, 법 제6조 제5항에 따른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결정은 절차상 하자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보훈부는 박 대령 건을 포함해 직권으로 등록된 무공수훈자 사례 전반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앞으로는 직권 등록 사안에 대해 보훈심사위원회 심의를 의무화하고, 위원회 내에 무공수훈자 심의를 전담할 팀을 신설해 공적 내용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기로 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가유공자 제도가 갖는 상징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감안해 더욱 신중하고 공정한 등록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