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문항설계, 오답 강요하는 질문 ... 이쯤되면 여론조작이다

  • 등록 2025.08.21 10: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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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여론조사, 정책의 해법인가 정치의 무기인가 ... 대표성 없는 표본도 함정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2개·3개·반대) ▲도입 시점 등을 묻는다. 다음 달 2일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지만 앞선 조사들과 충돌한다면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제주연구원의 발표 시점도 뒷말을 낳았다. 도의회가 같은 기관(리얼미터)에 의뢰해 6일간 조사를 막 시작하기 하루 전, 연구원 결과가 공개된 것이다.

 

자연히 "도의회 조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랐다.

 

연구원 조사는 문항 설계도 논란이다. "행정의 민주성과 주민 참여 강화,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3개 기초시를 추진한다"는 긍정적 전제를 깔고 곧바로 찬반을 물었다. 자연히 응답이 특정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도의회가 준비한 설문도 마찬가지다. 본래 취지는 '2개 구역안과 3개 구역안 중 갈등 해소'였지만 문항에는 '2개 또는 3개 구역안' 예시와 함께 느닷없이 '기초자치단체 설치 반대' 항목까지 들어갔다. 2개 또는 3개 구역안을 찬성하지 않는 도민이 선택은 '기초자치단체 반대' 밖에 없는 것이다. 이쯤되면 거의 대놓고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여론조사다.

 

더 어이없는 건 이번 여론조사에서 제주시를 동.서 2개 권역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의견을 서귀포시민에게도 물어본다는 것이다. 황당할 노릇이다. 

 

물론 2023년 공론화 과정을 거쳐 14억5000만원의 세금을 들여 도민참여단이 권고한 3개 구역안 자체도 문제다. 그 시절에도 3개 구역안 도출은 지금까지도 설득력 있는 논리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한 제주도 집행부의 결론은 여전히 논란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조사와 제주연구원 조사가 정반대 수치를 내놓은 점도 문제다. 제주시를 2개 권역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도당 조사는 반대가 더 많았고, 연구원 조사는 찬성이 우세했다. 불과 열흘 차이로 공개된 두 조사가 충돌하면서 뒤이어 진행되는 도의회 조사의 무게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한쪽을 설득할 수 없고, 이미 도민 사회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 

 

 

조사방식도 문제다. 이번 도의회 여론조사는 웹조사 80%·유선전화 20% 방식으로 한다. 이동통신 3사 기반 모바일 웹조사 방식은 접근성이 높지만 인터넷·모바일 활용도가 높은 계층에 표본이 기울 수밖에 없다. 청년층 응답이 많아지면 '변화' 성향이 과대 반영되고, 고령층 참여가 부족하면 전통적 여론은 과소평가된다.

 

이런 편향된 데이터를 '민심의 단면'으로 포장하는 순간, 왜곡된 인식을 도민 사회에 심어줄 위험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불완전한 조사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증폭된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이를 곧바로 인용해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결국 도민의 실제 의견이라기보다 특정 집단의 응답이 '민심'으로 둔갑하고, 여론조사 자체에 대한 불신만 더 깊어진다. 

 

불과 한 달 새 연구원과 도의회가 나란히 리얼미터에 조사를 의뢰했다. 표본은 각각 1000명과 1500명 규모다. 리얼미터 조사 비용은 통상 1000명 기준 2000만~40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도의회 조사는 약 3000만원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돈보다 신뢰다. 수천만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데 도민이 납득할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이는 곧 행정 불신으로 이어진다. 

 

 

여론조사가 잇따라 나온 배경에는 정치적 셈법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민주당 도당은 반대 여론이 높게 나온 결과를, 연구원은 찬성이 우세한 결과를, 도의회는 또 다른 조사를 각각 내놓는다. 기관마다, 정파마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치만을 앞세우는 형국이다.

 

정치권과 도, 도의회가 각자 민심을 확인하겠다고 나서는 모습 자체가 '민의를 앞세운 정치 게임'이다.  

 

제주 행정체제 개편은 도민 삶의 틀을 다시 짜는 중대한 과제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조사들은 지나치게 가볍다. 설문은 도민에게 오답을 강요하고, 결과는 정치적 무기로 소비된다.

 

여론조사가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 되려면 최소한 질문부터 정직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관마다 따로, 각기 다른 설계로, 의도만을 드러낸다면 이는 분열의 발판에 불과하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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