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31일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에 포트홀이 발생해 보수작업 중이다. [제이누리 DB]](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417/art_17453832984764_9c87cc.jpg)
제주도는 말 그대로 '물의 섬'입니다.
도민이 마시는 수돗물은 물론, 밭에 뿌리는 농업용수, 골프장 잔디에 사용하는 관수용수까지 대부분이 지하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제주도 전체 생활·농업·공업용수의 약 96%가 지하수에서 확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도내에는 3만8000개가 넘는 관정이 존재하고, 상수도와 하수도를 포함한 관로 길이만도 각각 2000㎞를 넘습니다. 섬 전체가 지하수 관로망 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지하 매설 기반이 복잡하고 물 사용량도 많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이나 부산처럼 대형 싱크홀이 생겼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주의 지질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주는 현무암질 화산섬으로 땅속에 다공성 현무암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빗물이 떨어지면 땅 위에 고이기보다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고, 지하수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지하 공동이 생기고 흙이 유실되는 전형적인 땅꺼짐(싱크홀) 생성 구조를 근본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퇴적층 지반이 많은 수도권과 달리, 제주에서는 '물고임'보다 '물빠짐'이 먼저 일어납니다. 그래서 토사가 빠져나가며 생기는 공동 붕괴나 도로 함몰 사고가 자주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해 1월 31일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도로에 포트홀이 발생해 10대 가량의 차량이 펑크가 났다. [제이누리 DB]](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417/art_17453832979946_056454.jpg)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제주는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지하수에 의존하는 지역입니다. 마을마다 관정이 뚫려 있고, 상하수도관은 물론 농업용수 관로, 축산 배수관, 골프장 관수시설 등 수많은 지하 배관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그만큼 유지관리의 부담도 큽니다.
2021년 제주도는 도내 노후 하수관로 198㎞를 대상으로 정밀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파손, 침하, 균열 등 2만9600여 건의 이상 징후가 확인됐고, 이 중 1127건은 지반침하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구간으로 분석됐습니다. 관로 노후화로 발생한 누수가 주변 흙을 쓸어내며 지하에 빈 공간을 만든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 셈입니다.
이처럼 땅속이 비어가고 있지만 눈에 띄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자 우연입니다. 실제로 2022년 이후 제주시 동지역에서는 소규모 싱크홀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수관 파손, 우수박스 손상, 농업용수관 누수 등이 주요 원인으로 폭 2~2.5m, 깊이 1.5~1.8m 규모로 생긴 사례도 있습니다.
2023년 11월 22일 밤에는 제주시 탑동사거리와 애월 더럭초 인근에서 불과 17분 간격으로 싱크홀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도심 도로 아래에 지하 공동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2023년 11월 18일 오전 제주공항 입구 교차로에 발생한 포트홀에 렌터카 셔틀버스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이누리 DB]](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417/art_1745383297003_05347d.jpg)
서울시는 지표투과레이더(GPR)와 인공지능(AI) 기반 장비를 활용해 도심 도로 1930㎞ 구간을 정밀 점검한 결과, 329곳에서 지하 빈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이 중 38곳은 4시간 이내 복구하지 않으면 붕괴 가능성이 있는 긴급 등급으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아직 탐사 장비를 갖추지 못한 상황입니다. 주기적인 지반 점검 체계도 부족합니다. 지하수가 풍부하다는 이유만으로 ‘조용한 섬’이라는 인식을 유지해온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이 조용함이 위험의 방치로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제주의 싱크홀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덜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이 흐르면 침식은 일어나고, 구조물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물길이 많은 것은 자산입니다. 하지만 그 물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언제든 위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하수, 관정, 하수관은 단순한 설비가 아니라,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생명선이자 지반의 안전선입니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땅 아래는 정말 괜찮은 걸까요?
도민의 일상 아래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변화를 누가, 언제,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는지, 잠깐만요!! 한 번쯤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잠깐만요!!>는 <제이누리>만이 아닌 여러분의 생각도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 컷 또는 여러 컷의 사진에 담긴 스토리와 생각해볼 여지를 사연으로 담아 보내주십시오. 저희가 공유의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보낼 곳은 제이누리 대표메일(jnuri@jnuri.n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