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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신세계 (5)

폭력조직 ‘골드문’의 회장 석동출이 의문사를 당하고, 조직의 2인자 정청(황정민)과 3인자 이중구(박성웅)의 ‘왕좌의 게임’이 본격화한다. 폭력조직의 후계구도 경쟁에 난데없이 경찰이라는 ‘외세’까지 개입하면서 판이 어지럽게 돌아간다.

 

 

폭력조직과 경찰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조직의 내부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경찰에 털리는 것을 눈치챈 2인자 정청은 중국 최고의 해커를 동원해 경찰이 조직에 심어놓은 빨대가 다름 아닌 자신의 형제와 같은 최측근 이자성(이정재)임을 알게 되고 깊은 번뇌에 빠진다. 결국 정청은 조직을 배반하는 한이 있어도 ‘브라더’ 이자성을 보호하기로 한다. 열심히 계산기 두드려보는 ‘타산’보다 ‘정’이 앞선다. 6년 전 목포바닥에서부터 다져온 ‘정’을 저버릴 수 없다.

 

이자성도 조직에서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것을 직감하고 사색이 돼 보스 정청의 호출에 응한다. 정청은 이자성과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 끄나풀은 바로 이놈이었다며 자신의 수행비서를 몸소 삽으로 때려죽이는 즉결처분을 한다. 이자성은 혼란스럽다. 정청이 정말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그리고 갈등한다. 험한 꼴 보기 전에 이쯤에서 빠져나가 경찰 울타리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더 남아 ‘신세계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자성의 마지막 선택은 ‘신세계 프로젝트’의 완성이 아니라, 결국 숨을 거둔 정청의 진정한 ‘브라더’가 되는 길이었다. 정청은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자성에게 자신이 그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과 경찰청 전산망을 해킹해서 수집한 이자성의 신상명세서를 숨겨둔 금고를 알려주고 숨을 거둔다.

 

이자성은 좀 거지같이 생겨먹었지만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하는 연변 출신 청부살인업자 ‘연변거지’들의 손을 빌려 경찰청 내부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단 2명인 강과장(최민식)과 고국장을 처치하고, 수하들을 풀어 3인자 이중구(박성웅), ‘골드문’ 조직 내에서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장이사(최일화)도 처치한다.

 

 

그리고 2인자였던 정청의 ‘브라더’로서 정청을 계승해 ‘골드문’의 회장직에 오른다. ‘어둠의 세계’의 신분을 세탁해서 ‘빛의 세계’로 가는 경우는 흔히 있어도, ‘빛의 세계’의 신분을 세탁해버리고 ‘어둠의 세계’에 제대로 자리잡는 흔치 않은 경로를 보여준다.

 

이자성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나누는 담장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어느 세계에서도 살 수 있고, 또한 한순간 실수로 자신이 원치 않는 세계에 떨어질 수도 있는 ‘경계인’이고 ‘회색인’이기도 하다. 결국 이자성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둠의 세계’를 선택한다.

 

그것을 ‘자의적 선택’이라고 한다면, 이자성이 경찰로 복귀한다고 해도 경찰수뇌부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어려울 터이지만, ‘골드문’을 선택한다면 무려 ‘회장직’이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골드문’ 회장이라면 경찰청장 부럽지 않다. 그러나 그런 ‘계산’만으로 이자성이 ‘어둠의 세계’로 뛰어내리지는 않았을 듯하다.

 

‘어둠의 세계’의 정청은 자신을 진정한 ‘브라더’의 정情으로 대해주고, 조직원들도 자신을 ‘보스’로 대해주는 반면, ‘빛의 세계’의 강과장은 자신을 하나의 도구 이상으로 대접해주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마지막’이라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임무만 내릴 뿐이다. 깡패도 최소한 이러지는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선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좁다란 담장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도 하고, 날카로운 면도날 위를 걷는 것처럼 위험천만하기도 하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 대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나를 선택하곤 한다. 그 선택은 온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계산’만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많은 경우 영화 속 정청이나 이자성처럼 ‘그놈의 정 때문에’ 계산기가 보여주는 답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떠나 경쟁사에 들어가는 임직원도 있고, 진보에서 보수로 갈아타는 정치인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나라를 팔아먹는 자들도 있다. 대개는 그들의 배신자나 철새로 매도하지만, 그들을 떠나게 만든 조직과 사람들의 ‘무정함’에 더 큰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담장 위를 걷는 경계인은 어느 쪽이든 자신을 쓰고 버리는 ‘도구’가 아니라 ‘정’으로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떨어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끝내 그리로 떨어진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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