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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8) 조선비행기공업을 세운 박흥식

 

제주도흥업

 

실제로 일제가 1938년 조사한 제주도 목장의 통계 자료에는 ‘녹산장은 면적 1000정보(300만 평)로 섬 제1의 평탄지이고, 개간에 착수했다’라고 적혀 있다. 이때 개간에 착수한 회사가 바로 제주도흥업이었다. 김수남의 눈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문장이 있었다.

 

1941년 박흥식은 제주도흥업 주식 100%를 인수하였다.

 

취체역이 아니라 사장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다른 자료에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녹산장 일대는 1944년 조선비행기공업을 세운, 한때 ‘조선의 제일 갑부’ 박흥식이 조종사 훈련장으로 불하받은 땅이었다.

 

녹산장 땅 중 일부는 가시리 마을공동목장으로 편입되었고, 사정이 어쨌든 나머지 땅은 통째로 박흥식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박흥식은 해방 이후에도 이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다.

 

조선비행기공업

 

박흥식은 1944년 10월 2일 주식회사 조선비행기공업 사장에 취임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비행기공업에 1945년부터 5년 동안 소득세와 사업세 등 면세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조선비행기공업은 1943년 이래 일제가 조선인 징병제를 추진하면서 기념사업으로 설립한 회사였다. 박흥식은 회사 설립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금년부터 징병제 실시에 따라 수백만의 장정이 영미 격멸에 참가하는 광영을 얻기에 이르렀다. 반도에서 총후의 우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징병제 실시를 계기로 국가가 요청하는 비행기를 생산하고 대동아전에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전선 총후가 하나가 되어 성전의 완대를 위해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제는 사업 구상 단계에서 박흥식을 사장으로 염두에 두었지만, 박흥식은 자신은 유통업자일뿐 비행기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고사하였다. 그러나 박흥식은 삼고초려 끝에 제안을 수락한다. 이와 관련하여 1966년 박흥식이 인터뷰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의 패전을 짐작하고 있었던 나는 그 명령을 거절하느니 비행기공장을 건설하여 그들에게 협력하면서 한국 청년들에게 비행기술을 습득하여 청장년 및 저명인사들을 취업시킴으로써 집요한 징용으로부터의 피난처로 제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비행기공업의 경험이 종전 후의 한국 자동차공업을 육성하는데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비행공장 건설을 승인하였다.”

 

조선비행기공업에서 만들고자 한 비행기는 ‘キ79丙(ki79병)’ 기종의 목철(木鐵)혼합기였다. 월 60대 비행기 생산을 목표로 했다. ‘キ79丙’ 고등연습기는 만주비행기제조가 생산한 기종으로 1939년 노몬한 전투에 참가한 79식 전투기를 고등연습기로 개조한 것이다. 조선총독부와 조선군사령부의 지도하에 이 기종을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만주비행기제조와 기술 제휴를 맺는다.

 

이와 별도로 박흥식은 1944년 10월 하순 기술진을 초빙하고 공작기계를 마련하기 위해 도쿄와 상하이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인다. 한편 국내에서는 조선직물과 동양방적의 안양공장과 인근 토지 10만평을 사들여 조립공장, 격납고, 비행장을 순차적으로 건설했다. 또한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광신상업학교를 조선비행기공업학교로 전환하고 본격적인 기술교육에 들어갔다.

 

キ79丙 고등연습기는 날개폭 11.50m, 길이 7.85m, 최고속도 340km/h, 총중량 1300kg, 항속거리 920km에 7.7m기총 2정을 장착한 기종이었다.

 

이 대목에서 김수남은 호흡을 멈추고 두 눈을 껌뻑였다. 두뇌가 회전을 멈춘 느낌이었다.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어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앞서 읽은 자료를 되작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봤더라…… 입술로는 저도 모르게 히엔, 히엔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히엔과 크기를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었던 것이다.

 

히엔은 실제 크기는 날개폭이 12m, 길이가 8.75m였다. 그 순간 김수남은 책상을 탁 쳤다. 그렇다면…… キ79丙 고등연습기는 언제든지 육군 가미카제용 자살특공기로 전환 가능한 비행기였다는 뜻이었다. 250kg의 폭탄을 탑재하고 적의 함대에 돌진할 수 있는 기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비행기공업은 1945년 8월 15일까지 목철혼합 시작기 1기를 생산하고 해방을 맞이하고 말았다. 실제로 비행이 가능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알려졌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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