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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SE7EN (5)

동양에 아내를 집에서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었다면, 서양엔 사람을 세상에서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이 있다. 바로 기독교의 ‘7가지 죽을 죄(seven deadly sin): 식탐·교만·욕망·분노·욕정·나태·시기다. 둘 다 ‘일곱’이라는 수는 같지만, 동양의 칠거지악과 서양의 7가지 죽을 죄의 공통점은 ‘시기’와 ‘욕정’뿐이다.

 

 

존 도의 연쇄살인 행각 첫 희생자는 집에 틀어박혀 ‘먹기’로 일관하는 비만환자다. 존 도는 이 딱한 비만환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스파게티를 ‘죽도록’ 먹이고, 마침내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찼을 때 배에 발길질을 해 그야말로 ‘배 터져 죽게’ 한다. 기독교가 지목한 ‘7가지 죄악’ 중 하나인 ‘식탐’에 대한 정죄다.

 

요즘처럼 맛집 탐방과 ‘먹방’이 대세를 이루는 우리 사회에서 식탐이 그토록 죽어 마땅한 죄악이라는 것이 다소 당황스럽지만, 기독교 사상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신학대전」에서 분명히 식탐(gluttony)을 ‘죽을 죄’로 규정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식탐의 죄를 범하는 5가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첫째, 너무 비싸고 귀한 음식을 먹는 것. 둘째, 너무 맛있게 먹는 것. 셋째, 배가 불렀는데도 먹는 것. 넷째, 정해진 식사 시간을 벗어나 먹는 것. 다섯째,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그것이다. 식탐의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 중에 2가지는 음식의 문제이고, 3가지는 음식을 먹는 사람의 문제다. 영화 속에서 식탐의 죄로 존 도에게 처형당하는 딱한 비만환자가 먹은 것은 그리 귀하거나 진미(珍味)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비만환자는 아마도 게걸스럽고, 배가 불렀는데도 계속 먹고, 시도 때도 없이 먹는 꼴이 매우 전투적인 기독교도인 존 도에게 발각된 듯하다.

 

 

굳이 기독교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식탐에 대한 경고는 다양하다. 톨스토이는 “신은 우리에게 음식을 주셨지만, 악마는 우리에게 식탐을 주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역시 “살기 위해 먹을 것이지, 먹기 위해 살지 말라”고 경고한다. 먹는 것이 죄악이 될 리 없고, 우리의 혀가 맛을 느끼는 것이 죄악이 될 리는 없겠다. 다만 기독교가 탐식을 범해서는 안 될 ‘7가지 죄악’ 중 하나로 못 박고,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톨스토이나 소크라테스가 ‘먹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낭비와 사치에 대한 경고인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누군가는 굶어 죽는데 누군가는 배 터져 죽는 것이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임에는 분명하겠다. 전세계 고급 식당에서 하루 저녁에 폐기 처분되는 음식물의 분량이면 세계 모든 결식아동들의 굶주림이 해결된다는 보고가 마음 아프다. 아마도 전세계 사람들이 ‘탐식’의 죄을 짓지 않는다면 기아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 세계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바로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칼리마쿠스(Callimachus)는 ‘내 배 속의 음식물이 모두 사라졌을 때, 내 영혼의 먹이가 다시 그득해진다’고 노래했다. 다이어트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가끔 금식이든 단식이든 해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 될 듯하다. 모든 종교에서 금식의 계율이 있는 것도 아마 그런 뜻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 걸핏하면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인지 혹은 ‘다이어트 투쟁’인지 모를 ‘금식’들은 어디에 갖다 붙여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럽다. 내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굶어 죽겠다며 카메라 앞에서 눈 질끈 감고 앉아 단식하고,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굶어 죽고 말겠다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드러눕는다. 죽을 방법은 참으로 많을 텐데 왜 굳이 굶어 죽겠다고 하는지도 얼핏 이해 난망이다.

 

기독교를 포함한 많은 사상가들이 ‘먹는 것’을 경계한 것은 ‘너무 먹는’ 과도한 욕망을 경계한 것일진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아예 안 먹겠다면 ‘안 먹는 것’이 곧 과도한 욕망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7가지 죄악에 ‘안 먹는 죄’를 추가해서 ‘8가지 죄악’으로 수정 보완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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