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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기생충 (7)

박사장 가족이 바캉스를 떠난 날 밤, 기택네 식구는 박사장 집 거실에서 술을 곁들인 가족 파티를 연다. 기택이 박사장의 아내가 의외로 순진하고 착한 구석이 있다고 평한다. 기택의 아내는 남편이 남의 아내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것에 심사가 상했는지 반론을 제기한다. “그게 다 여유 있으니까 착한 거야.”

 

 

박사장 아내의 ‘착함’이 여유로움의 결과에 불과한 것인지 천성인지 혹은 교양인지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박사장 아내가 착하다는 것에는 기택네 식구 모두가 동의한다. 박사장 아내는 기택네 식구들의 평가처럼 순진한 구석이 있고 기본적으로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재벌 사모님들의 엽기적인 풍모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착함’도 있다.

 

가짜 대학생 괴외선생인 기택의 아들, 가짜 미국 유학파 미술치료사인 기택의 딸, 가짜 ‘최고 가정부’ 이력을 가진 기택의 아내, VIP만 전문으로 모신다는 가짜 운전기사 기택, 이 모든 ‘가짜’들에게 순진하게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게다가 소탈하고 착하게 대한다.

 

그러나 박사장은 조금 다르다. 바깥일 하느라고 가정교사인 기택의 아들, 미술치료사인 기택의 딸, 그리고 가정부인 기택의 아내를 대할 시간과 기회는 거의 없다. 단지 새로 고용한 운전기사인 기택만을 출퇴근 차 안에서 대할 뿐이다.

 

박사장의 아내가 순진해서인지 이들 ‘가짜 세트’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는 반면, 박사장은 기택에게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을 느낀다. 사업상 수많은 인간 군상에 시달려 본 ‘바깥양반’의 내공이다.

 

 

기택의 운전실력은 나무랄 데 없다. ‘코너링’이 부드러워 차 안에서 마시는 커피잔이 출렁이지 않아 내심 흡족하다. 자신을 대하는 깍듯함도 트집 잡을 구석이 없다. 그런데 VIP만 모시는 이 ‘VIP 전용 기사’가 어느날 운전 중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향해 너무도 차진 발음으로 ‘저런…xx놈’을 외친다. 박사장이 순간 갸우뚱한다. 그리고 기택에 대해 뭔가 찝찝해진다.

 

집에 돌아온 박사장은 아내에게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함을 ‘뭐랄까… 지하철 타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토로한다. 봉준호 감독이 왜 그 장면에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700만 시민들을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취급하는 당혹스러운 대사를 넣었는지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박사장이 말하는 ‘냄새’는 아마도 문자 그대로 후각嗅覺의 문제가 아니라 기택에게서 고품격과는 거리가 있는 ‘보통사람’의 ‘느낌’이 든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 조금은 슬퍼진다.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은 그의 「화론畵論」에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라는 말을 남긴다. 만권의 책을 읽으면 굳이 드러내고 나타내려 애쓰지 않아도 학식의 향기와 기운이 글과 그림에 뿜어져 나온다는 말인 듯하다.

 

한 인간의 고매한 품격도, 그 천박함도 모두 아무리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 해도 추사의 서화처럼, 혹은 기택의 부지불식간의 쌍욕이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튀어나오듯 감추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 ‘위장취업자’들이 어디 기택네 식구들뿐이겠는가. 아무리 판단을 유보하려 해도 ‘위장취업’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학교수님들이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언행이 뉴스에서 빠지는 날이 드물다.

 

점잖고 품위 있어야 할 ‘VIP 기사’ 기택이 결정적인 순간 ‘저런 xx놈’을 외치듯, 이들도 기택처럼 잘 포장한 채 꾸미고 다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막말과 ‘막짓’의 ‘본바닥’이 드러나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그 정도면 이들은 ‘위장취업자’들임에 분명하다.

 

박사장의 아내는 순진하거나 혹은 너무 착해서, 박사장은 공사다망하거나 우유부단해서 ‘찝찝한’ 기택을 단호하게 내치지도 못하고 심층조사를 해보지도 않는다. 그저 찝찝해하면서 뭉갠다. 그리고 그 결말은 박사장네 참극으로 돌아온다. 주인이 순진해서든, 우유부단해서든 나랏일을 위장취업자들에게 맡겨 놓으면 나라의 주인이 위험해진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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