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선비들의 다례를 엿보다 ... 차와 시의 어울림, 멋과 맛이 있는 풍경

 

1843년 어느 날, 추사가 그토록 기다리던 차를 갖고 초의선사 일행이 제주에 오자, 제주의 제자들도 추사 유배지인 수성초당에 모여 선비다례가 열렸다. 조선 후기 유교를 대표하는 추사 김정희와 불교를 대표하는 초의선사가 차를 통해 종교적·학문적 한계를 뛰어넘는, 교류·화합·공감의 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팽주는 수성초당의 주인인 추사 김정희이며, 팽주 측 선비로는 추사의 제주제자들인 매계 이한우(이한진)·강공규·강도순이다. 손님은 초의선사와 향훈 스님 그리고 소치 허련이며, 그 외 화동과 다동이 곁에서 시중을 들었을 것이다.

 

추사 이외의 인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

 

초의선사는 추사가 태어난 해인 1786년에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숭유억불 정책으로 침체되었던 조선 불교계에 일대 선풍을 일으킨 선승(禪僧)이며, 특히 차문화를 중흥시켜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그는 불교 이외에도 도교와 유학 등 여러 분야에 능통하였다.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과 두터운 교분을 쌓는 한편, 추사 김정희를 불교에 귀의케 한 비범한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6개월여 머물렀다.

 

소치 허련은 1835년에 초의선사를 처음 만나 시(詩)·서(書)·화(畵)의 기본을 익혔다. 1839년 초의선사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를 만나 체계적인 서화수업을 받았다. 이후 그는, 19세기 조선 화단에서 장승업과 함께 가장 중요한 화가로 주목받았다.

 

추사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에서는 이만한 그림이 없다고 극찬할 정도로 서화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오늘날 진도 관광 1번지인 운림산방은 추사가 운명하던 해에, 소치 허련이 낙향하여 짓고 머문 곳의 이름이다.

 

소치 허련과 그의 아들 미산 허형, 손자 남농 허건, 증손자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남종화 계보의 시조이기도 하다. 그는 스승 추사에게 배움을 위해 세 번 제주를 방문하여 1년여 머물렀다.

 

향훈 스님은 해남 대둔사 스님으로 추사가 초의선사를 명선(茗禪)이라 칭했던 것처럼 다선(茶禪)이라 칭할 만큼 차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다.

 

제주 제자인 매계 이한우은 천문·산경·지리·병서 등에 통달하였다. 특히 시에 능하여 1853년 제주목사 목인배는 이한우의 글을 ‘남국태두’ 즉 남국의 태산이요 북두칠성이라고 극찬하였다. 추사 김정희의 적거지 당호(堂號)를 수성초당(壽星草堂)이라 이름 지었던 매계는, 제주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다인(茶人)이었다.

 

진사 강공규는 추사 김정희가 일찍이 칭찬하며 말하길, ‘강과 이(李) 두 선비는 붙어 가고 붙어 오니 실로 원앙이 함께 하는 것 같구나.’라고 할 만큼 매계 이한우와 매우 친한 선비였다.

 

선비들의 모임에 항시 대기했던 무리들도 있었다. 이도령 곁에는 방자가 있듯 손님을 안내하는 다동과 정성껏 다화를 꽂는 화동도 있었을 것이다. 차를 우려내고 대접하려면 다양한 다기도 있었을 것이다. 다관·물식힘 사발·차통·차반의 차보를 벗겨 접어서 주인에게 넘겨주는 다동이, 찻잔·다식그릇·다식저·다과도 내어놓았을 것이다. 이제 우려낸 차를 다동이 선비들에게 공손히 올리면서 본격적인 시회가 열린다.

 

선비들에게 차와 시는 한 묶음의 설치예술 행위였을 것이다. 잔을 든 주인인 추사가 견향(見香)이란 시를 먼저 읊는다. 견향이란 부처님의 향기를 맡고 바른 지혜와 진리를 깨친다는 의미란다.

 

茫茫大地(망망대지) 망망한 대지에
腥濁逆鼻(성탁역비) 비리고 탁한 내음 코 찌르는데
眼中妙香(안중묘향) 눈 속의 묘한 향기
誰發其秘(수발기비) 그 신비로움을 누가 발할까
木犀無隱(목서무은) 물푸레나무는 자취가 들어나고
天花如意(천화여의) 천화는 내 맘 같으니
光陰互用(광음호용) 빛과 소리 서로 오가는데
文殊不二(문수불이) 문수(文殊)보살과 같이 아파하는 마음인 것을

 

이어 손님인 초의선사가 화답시를 읊는다.

 

예부터 어진 성인들은 모두 차를 즐겼나니
차는 군자와 같아 성품에 삿됨이 없네
사람이 차를 처음 마시게 된 것은
멀리 설령(중국에 있는 산맥 이름)에서 찻잎을 따면서라네
차의 참된 본체는 오묘한 근원을 통하였고
묘한 근원에 집착하지 않으면 바라밀(보살들의 수행)이 되리라
비단으로 묶인 옥병 마개를 잘 끌러
먼저 친구님네들에게 선사하노라.

 

이에 제주선비인 매계 이한우가 화답하다.

 

千里南溟一草堂 천 리 밖 남쪽 물가 초가집 한 채
(천리남명일초당)
聖恩許見壽星光 임금은 노인성을 보는 은혜를 내리셨네
(성은허견수성광)
孤衷夜夜焚香坐 밤마다 외로운 마음 향 사르고 앉아
(고충야야분향좌)
感泣頭邊白髮生 흐느껴 울적마다 흰 머리털 느네
(감읍두변백발생)

 

위의 시는 은사인 추사에게 바치는 매계의 시이다. 매계는 스승이 머무는 집을,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수성초당이라 이름 지었다. 고상하고 운치 있는 이름 아닌가.

 

추사를 위로하기 위해 향훈 스님이 승무를 추어 청아한 분위기를 돋우는 한편, 소치 허련은 불이선란(不二禪蘭)을 화폭에 그려 넣어 다례의 예술성을 한층 고조시켰을 것이다.

 

선비의 다례는 차와 시의 어울림이고 멋과 맛이 있는 풍경이다. 서화가 있고 승무가 있으니 선비 풍류의 진면목이 엿보인다. 옛날 선비들의 다례 정취를 느끼는 것은 온고지신의 지혜를 얻는 멋스러움과 음식을 골라 먹는 맛스러움을 느끼는 것과 같다.

 

요사이 나는 커피도 녹차도 마신다. 차도 융합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나 할까. 균형 있고 절제된 음식섭취에서 건강을 만들 듯 차의 세계도 그러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술과 안주가 있는 풍경으로 변화한지 이미 오래이다. 그래도 현대를 사는 선비의 길은 맛과 멋이 배어 있는 다도의 길이 아닌가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1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