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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떠난 재일 제주선인들 ... 만리타향 일본서 후손과 고향을 위한 헌신적 삶

 

현재의 재일교포 수는 일본귀화 등으로 점차 줄어들어 50만 정도이고, 제주 출신이 9만여 명이라 한다. 전국 인구분포에서 제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100분의 1도 안 되는데, 유독 일본에 제주의 후예들이 많은 이유가 궁금하다.

 

재일제주인 1세들은 학업을 위해 건너간 이도 있겠지만, 일제의 침탈로 더욱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 정치사회적 혼란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인들이 꺼리는 유리, 금속, 고무, 방직 공장 등지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억척스럽게 삶을 일구었다.

 

1922년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기미가요마루(君大丸)는 제주와 오사카 간의 정기여객선으로, 제주전역 도민을 대상으로 일본이주를 부추기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1923년 도내인구 20만9060 명 대비 재일제주선인은 1만381명, 1927년 21만508명 대비 3만505명, 1934년 18만8400명 대비 5만45명으로 그 수가 급증했다. 이런 영향으로 오사카에 제주촌이 형성되어 2세들을 위한 교육기관들이 들어서고, 그중 우도 출신 이봉춘 등이 1936년에 비밀리에 설립한 성심야학교가 유명하다.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뒤로 하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야했던 제주선인들. 제주 마을 중 재일동포의 지원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재일제주선인들은 온갖 수모와 풍상을 겪으면서도 후손과 고향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만리타향 일본에서 청춘을 불사르며 자수성가한 재일동포 1세대의 입지전적인 삶을 엿보자.

 

배우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내 마음의 풍금(1999)’의 배경이 되었던 1960년대 초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추어 동무들과 동요를 따라 부르던 그 시절. 음악시간이 되면 학교에 하나밖에 없는 풍금을 옮기느라 우리들은 야단법석을 떨어야 했다.

 

학교 방문에서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최정숙 초대교육감은, 열 악한 교육재정 속에서도 학교에 풍금 보내기 운동을 전개해, 도내 대부분의 초등학교 교실에 풍금이 배치될 수 있었다. 그 운동 중심에는 표선면 가시리 출신인 사업가 안재호(1915-1994)를 비롯한 재일제주선인들이 있었다.

 

특히 안재호는 일본에서의 재계순위가 24위에 들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 외가인 가시리에서 자라기도 한 나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랑스러운 제주선인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을 넘어 흠모의 대상으로 가슴에 새기기도 했다.

 

재일제주인 1세대들은 해방 전후 학교신축, 마을회관 건립, 도로 포장 등 지역개발사업과 교육사업 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350만여 본의 감귤묘목 기증은 오늘의 제주도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960년대부터 제주도 전역에서 재배된 감귤은 대학나무가 되어, 제주경제의 기반을 다지게 한 견인차이기도 했다.

 

이들이 보여준 도전정신과 희생정신 그리고 나눔의 삶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흠모의 정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개인이, 사회가, 나라가 발전하려면 롤 모델이 되는 선인들을 역사 속에서 찾아 만나야 한다. 자식은 부모와 조상을 롤 모델로 삼아 살아갈 것이고, 사회는 역사적 인물을 롤 모델로 삼아 품격 있는 사회와 나라를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의 국난 속에서 나는 자식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는 롤 모델이 되고 있는지 자성해 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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