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팔순 노인이 50여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인은 선고 20일 전 세상을 등졌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황미정 판사는 지난 18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50여년 전인 1968년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태주 할아버지(80)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38년 제주시 도련1동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1963년 군 복무를 마치고 난 후 제주시에서 ‘농사개량구락부’와 제주시시범농‘ 회장을 맡다 1967년 ’농업기술연수생‘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체류하던 때인 1967년 5월과 6월에 현지 친척들로부터 당시 5000원 상당의 중고 양복 한 벌과 만년필 세 자루를 받았다.
이 만년필이 사단의 시작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귀국 후 만년필이 고장이 나자 이를 수리공에게 맡겼다. 수리공은 이 만년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내부에 적힌 ‘CHULLIMA’(천리마)와 ‘조선 청진’이라는 글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른바 '만년필 간첩 사건'이다.
천리마는 195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노력 동원과 사상 개조 운동이다. 조선 청진은 북한 함경북도의 한 지명이다.
김 할아버지는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과정에서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으라고 양복 한 벌을 받았고, 만년필도 선물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유죄’였다. 김 할어버지는 징역 2년 형에 처해졌다.
김 할아버지는 출소 후 농업에 전념을 하면서도 50년이 넘게 가슴 속에 한을 품고 살았다. 한을 풀기 위해 2015년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선고를 20일가량 앞두고 있던 지난해 12월3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재심 과정에서 황 판사는 “김씨가 중고 양복 한 벌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양복을 준 이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라는 점, 김씨가 그 내용을 알고 양복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김 할아버지가 받은 만년필에 대해서도 “김씨가 반국가단체나 국외의 공산계열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 만년필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황 판사는 이어 “ 때문에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