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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12)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모택동이 그 회의장에 들어설 때 표면적으로는 영수로 대접했지만 유소기, 등소평과 그 그룹의 마음속에는 이미 ‘경이원지(敬而遠之)’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들은 의기투합해 있었다. 순서대로 하나씩 진행하고 있었다.

 

모택동이 들어오자 모두 곤란해 하는 게 분명하였다. 태도가 부자연스러웠다. 자신들을 불편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자신들을 불신임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자신들을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즐겁게 놀고 있던 아이들이 집안어른을 갑자기 만난 듯한 태도였다.

 

어쩔 수 없이 존중은 하지만 뼈 속 깊이에서는 눈이 빠지게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양새였다. 모택동은 당시 유소기 일당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읽었다. 사나운 얼굴빛과 목소리로 발언하는 도중, 내내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을 겉으로만 존중하고 있었다.

 

유소기는 내내 연필을 손등에 올려놓고 돌리고 있었다. 눈빛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면만 응시하였다. 등소평은 고개를 들고 자신의 말을 듣는 듯이 보였다. 때때로 고개를 숙여 손에 들고 있던 자료에 몇 글자 적기도 했지만 사실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준이회의(遵義會議)에서 권력을 잡은 이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들이대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철저히 무시당한 회의였다.

 

모택동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2선으로 물러서 있었음을. 당과 정, 군의 일상 사무를 동고동락하였던 유소기, 등소평에게 처리하게 한 때부터 대권은 이미 그들의 수중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을.

 

곧바로 이어진 회의에서 모택동은 반격하기로 결정하였다. 모택동은 『중화인민공화국헌법』과 『중국공산당당장(黨章)』을 가지고 회의에 출석하였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모택동은 전체를 향해 뜻밖에 허를 찌르는 발언을 시작한다.

 

그는 등소평과 유소기를 바라보면서 발언하였다. “당신들, 한 명은 내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 명은 내게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소.” 한 손으로 『헌법』을 들고 “이것은 헌법이요.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이요. 내게는 발언할 자유가 있소.” 또 다른 한 손에는 『당장』을 들고 소리 높였다. “이것은 중국공산당 당장이오. 나는 중국공산당 당원이오. 당의 회의에 참가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헌법』과 『당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진중하면서도 힘 있게 내리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들이 무슨 권한이 있어 회의 참가를 못하게 하는 것이오? 무슨 권력을 가졌기에 발언을 못하게 막는 것이오? 내가 계급투쟁을 이야기하면 당신들은 듣지 않으려고 하는데. 공산당이 계급투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무슨 공산당인 게요? 당신들 손안의 권력은 도대체 누가 준 것이란 말이오?”

 

 

그날, 격노하였다. 바로 그때, 모택동은 잃어버린 권력을 빼앗아 오기로 결정하였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6월초의 상황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당시 유소기, 등소평은 특별기를 타고 문화대혁명의 상황을 보고하러 항주로 왔었다. 모택동은 위풍을 감추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유소기와 등소평은 상당히 공손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소파에 앞뒤로 몸을 숙여 앉았다. 등소평은 양 팔꿈치를 허벅지에 기대 공손하게 모택동을 보며 말했다.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완수할 것인지 모두가 사상적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주석께서 북경으로 오셔서 주재해 주십시오.” 유소기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택동은 평온하게 말했다. “아직은 당신들에게 위탁해야 하겠소. 어느 정도는 말이오. 당신들이 여러 상황을 기회를 보면서 처리해 주시오. 내가 돌아갈 필요가 있을 때 돌아갈 것이오. 지금은 그리 급하다 보지 않소.”

 

앞에서 서술한 바대로, 회의 전에 등소평은 선의에 의한 것이라며 모택동에게 주석님의 건강이 좋지 않으니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것이 모택동을 화나게 만들었다.

 

유소기와 논쟁이 일자 모택동은 한 손에 『당장』을, 다른 한 손에 『헌법』을 들고 회의장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 “한 명은 나를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하고(등소평을 가리킨다), 한 명은 발언하지 못하게 하니(유소기를 가리킨다), 어째서 『당장』과 『헌법』이 내게 준 권리를 빼앗아 가는가?” 질책이었다. 시작이었다. 이미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극단 투쟁의 시작이었다.

 

자신을 찾아와 공손하게 문화대혁명을 말하고 있는 유소기와 등소평을 보면서 모택동은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문화대혁명이 아직 제대로 전개되지도 않았는데 당신들 변한 본새라니. 이전에 자신들 주제도 모르고 처지를 잃고 어떻게 행동 했었노?” 유소기와 등소평이 예전과 비할 바 없이 변한 공경스런 눈빛을 보면서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을 발동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과 적대하는 모든 세력을 없애버릴 핑계가 필요함을 실감하였다.

 

‘문혁’이 시작된 지 한 달여 지난 지금, 유소기와 등소평은 중앙 업무를 주재하면서 공작조들이 대대적으로 학생운동을 진압하는 투쟁을 이끌고 있었다. 모택동은 짐짓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수영도 하고 독서도 하면서 여름 한 때를 보냈다. 이제 나서서 국면을 수습할 때가 된 것이다. 모택동은 순간 자신이 쓴 사가 떠올랐다. “국가 산하의 한 지역을 수습해 급히 전지를 분해해야 하리니”(『청평락清平樂·장계전쟁蔣桂戰爭』)

 

면전에서 보고는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인 보고를 받으면서 보고받는 느낌을 향유하고 있었다. 앞에 서있는 인물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말만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법률과 기율이 엄정하게 집행하도록 하는 권위를 상실한 영수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아니던가. 유소기, 등소평이 6월초에 항주에 나타나 존중하듯이 행동했지만, 표면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행했던 가식이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책략이 있고 그들만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들은 아직 젖내가 가시지 않은 꼬맹이와 다름없다. 뒤질세라 앞 다퉈 집안어른에게 사탕을 요구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으랴. 꼬맹이들이 급히 그리고 공손하게 앞 다퉈 보고하는 모습을 봐라보면서 모택동은 정치가의 진정한 즐거움은 자신의 곁에 충성심에 불타는 신도들이 잔뜩 에워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택동은 담배 한 개비에 불붙이고 연기를 뿜으면서 편안하게 소파에 기댔다. 그의 몸은 보고하고 있는 이들보다 컸다. 앉은 자세도 위풍당당하였다. 무척 자연스러웠다. 모택동은 그들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고 그들을 지휘할 수 있었다.

 

평등한 권력은 중심이 없다. 평등에 가까운 권력도 충분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제후들이 강대하면 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큰 차이가 있는 권력이어야만 진정한 영수의 권위를 이룰 수 있다.

 

현재 저들은 날 수 있을 만큼의 날개가 다 자라지 못했다.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중국이란 이 정치대국에서 저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갖춘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저 이렇게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면 그만이다.

 

물론 저들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하려할 것이다. 그러나 끝내 자신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을 결코 없다. 지금은 저들의 권력을 점차 확대시켜, 저들을 이용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권력을 새로이 건설하면 된다.

 

사실 현 중국에서 모택동 자신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원대하게 생각하는 바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몇몇 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왜 늘 남방에서 지내기를 원하고 북경에 머무르지 않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중남해는 분명 모택동의 수부(首府)다. 그러나 중남해에서는 대접받지 못한다. 항주(杭州), 무한(武漢), 상해(上海), 장사(長沙)에서는 성대하게 대접하지 않던가.

 

중남해에서 모택동은 최고위 영수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지켜주고 서비스도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게 자주 봐 신선하지도 않았다. 순서대로 하나씩 착착 기계적으로 진행되지 않던가. 경위조차도 자신을 볼 기회가 많고도 많았다. 외지하고는 딴판이다.

 

항주나 무한에서는 황공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한시도 떠나지 않고 숭배하고 자신을 에워싸 서비스를 하지 않던가. 타지의 모든 성과 시의 대표와 군관구 책임자들은 밤낮으로 내 몸 가까이 둘러싸 봉양하는 것을 중임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복무원들도 자신을 보기만 하면 막 피어오른 신선한 꽃처럼 수줍어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여 안절부절못하지 않던가. 모든 세상이 자신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어디에서든 손짓만 하면 곧바로 움직이지 않던가.

 

 

모택동은 각 성과 시를 시찰할 때 자신의 막강한 권력이 공간 중에 이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북경에서 천리나 떨어진 항주, 무한에서 수영도 하고 일광욕도 즐기면서 사람들에게 빽빽이 둘러싸여 아무런 억매임 없이 한담을 나눌 때도 북경의 모든 것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 더 자유롭고 더 유쾌하고 더 한가로웠다. 여유로운 여행을 마치면 다시 장엄하고 엄숙한 중남해에 가서 정치를 지휘하면 된다. 어찌 흥미롭지 않을쏘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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