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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 주역 ... 함운경 "인생의 동지 잃어 가슴 아프다"

 

1980년대 핫이슈였던 미국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의 주역 중 한명인 제주출신 양동주씨가 13일 타계했다. 향년 55세.

 

고인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사회문제에 눈을 떠 학살사태를 빚은 광주민주화 운동의 배후 책임을 묻는 시위·농성에 가담했다.

 

그의 인생사의 한 획은 1985년 5월 23일부터 4일간 이어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었다. 전국 대학생 대표조직인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ㆍ全學聯)의 삼민투쟁위윈회(삼민투) 산하 ‘광주학살원흉처단투쟁위원회’ 소속의 서울지역 5개 대학생 73명이 서울 중구 소재 미국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점거 직후 학생들이 내건 요구사항은 광주사태 책임에 대한 미국의 공개사과와 이를 위한 미 대사와의 면담 및 내·외신 기자회견 보장이었다.

 

농성 나흘째인 26일 학생들은 자진해서 농성을 해제했다. 농성 해제 후 연행된 73명 중 25명이 28일 오후 구속됐고, 구류 43명, 훈방 5명으로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일단락됐다.

 

고인은 당시 투쟁위원장이었던 함운경씨와 더불어 농성을 주도, 구속된 인물중 한명이다.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당시 광주사태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책임 거론 조차도 쉽지 않았던 시기에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광주학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고, '반미'가 금기시되던 사회적 분위기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 후로도 숱하게 민주화 운동에 매진했던 고인은 10여년 전 제주로 귀향, 감귤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제주에 귀향한 후에도 제주의 개발이슈와 환경파괴 등 현안에 굳건히 목소리를 내며 비판의식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5년여 전 암 진단을 받고 암과의 사투를 벌이며 항암치료를 거듭했으나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재진료차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이었지만 급작스레 병세가 악화됐다.

 

그와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였던 함운경씨는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22~23살 때 처음 만나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농성한 73인 중에 한 사람이고, 학생대표단의 일원으로서 10년 이상의 감옥살이를 각오한 강건한 친구인데 ··· 이렇게 일찍 가버렸다.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같이한 동지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그와 동문인 고경대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역시 "안타깝다. 가슴 깊이 애도한다"며 말을 아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분향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선미씨가 있다.

 

발인은 15일 오전 11시30분으로 장지는 벽제장이다. 16일 오전 11시 제주 양지공원에 안치하며 안치제를 갖는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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