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제26회] 근대적 경영기법과 수입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의 사회적윤리

 

청암(晴岩) 박종실(朴宗實)은 근대 무역인으로 한국해운업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제주지역 근대경제 형성에 기여한 제주의 대표적 기업가이다. 박종실은 신용과 근면, 절약을 상인정신으로 삼았으며 신용제일주의의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현금과 부동산 그리고 상품에 분산 투자하여 위험도를 낮추며 시세변동에 탄력적으로 대비하는 방식을 가진 사업가였다. 이러한 박종실의 경영철학은 ‘신용제일주의’, ‘삼균배지론(三均配之論) 투자관’, ‘합리적 기업경영관’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은 인정과 도덕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그를 멀리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해서 일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어쩐지 하느님이 도우셔서 일이 잘된 것 같이 생각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족함을 알고 늘 만족한 마음을 가지면 일생동안 욕된 일이 없고, 욕망을 멈추는 것을 알고 늘 억제하면 일생 부끄러움이 없다(知足常足 終身無辱 知止常止 終身無恥).

 

평생 ‘신용이 생명이다’를 강조했던 박종실은 신용, 근면, 절약 중에서 특히 신용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여 항상 신용제일주의를 기본신조로 삼아 사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제주지점에서 당시 돈 3천 원 정도를 빌려 쓸 수 있는 당좌차월을 갖고 있던 사람은 박종실을 포함한 세 사람 뿐 이었다. 이처럼 일본인에 의한 금융독점 상황에서도 박종실은 금융기관 신용이 좋았다.

 

어떤 투자라도 자기 실력 삼분의 일 이상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재산을 보존하는 방법에는 재산 중 삼분의 일은 현금, 삼분의 일은 부동산, 나머지는 상품으로 해 놓으면 여하한 변동에도 큰 이익은 없다 해도 손해를 보는 일은 없다(三均配之論).

 

박종실은 자본의 구성을 현금, 상품, 부동산의 삼분법으로 나누어 투자하여 위험을 줄이고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는 안정적인 삼균배지론 투자관을 실천했다. 현대경영학의 개념에 보면 ‘포트폴리오(portfolio)’라고 할 수 있다. 대동아 전쟁 당시 박종실은 전라남도 나주군으로 이주한 때 다른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현금으로 가져갔으나, 그는 부동산 등의 재산은 두고 갔다. 결국 재산을 처분해 현금으로 갖고 갔던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가치가 하락하여 큰 손해를 보았지만 그의 부동산은 그대로 남아 있어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1951년에는 석유업체 덕순사(德順社)를 맡아 경영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본은 휘발유 3백 드럼뿐이었다. 석유사업을 시작한지 1년 후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물은 적이 있었는데, 또 다시 휘발유는 몇 드럼이나 남았냐고 묻고, 휘발유 3백 드럼으로 시작했으니 언제나 휘발유 3백 드럼의 재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박종실의 안목은 1919년 10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제주시 동문로터리 남쪽 속칭 소래기동산 2,080평을 매입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삼균배지론 투자 원칙에 의한 토지매입 사례로 1927년에는 다시 2,000평을 매입하였으며 그 후에도 이 주위에 상당한 토지를 매입하였다. 당시 이 땅은 불모지였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이었지만 제주도의 관문인 산지포구를 굽어보는 자리에 있고 지형이 자연경사를 바다 쪽으로 이루고 있으며 배수가 잘되는 고지였으므로 장차 주거 최적지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 토지는 박종실이 예견한대로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칠성통과 더불어 제주도 제1의 요지가 되었다. 그 후 제주도의 경제중심지가 되면서 동문공설시장이 개설되고 도내 모든 물자의 산지가 되어 교회와 극장이 건축되었다. 박종실은 토지를 당국에 무상으로 희사했으며, 이는 도로 및 공공건물로 사용되었고 토지 중의 일부를 개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고 주택을 건축할 때 반드시 기와 혹은 슬라브, 최소한 스레트 지붕으로 건축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하여 도심 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박종실은 제주지역에 근대적인 경영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기업선구자이다. 20세기 초 제주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순박한 도민들에게 그들의 상술(商術)을 강제 적용시켰다. 사농공상의 사회질서를 고집하던 토착상인들은 꼼짝없이 일본인에게 모든 상권을 넘겨주어야 만 했다. 그러나 박종실은 일본인 독점의 상권에 도전을 위해 제주도민 특유의 대량생산 기법과 새로운 판매방법을 찾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엿을 만드는 법도 바꾸고 파는 상술도 달리했다. 이후 박종실과 같이 근무했던 종업원들은 박종실의 영업기법을 익히고 난 뒤 독립하게 되면 제주의 기업가로서 활발히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종업원에 대해서는 노력에 비례하여 대가를 지불한다는 신조로 기업을 경영하였다. 훗날 고창현(高昌炫), 홍종언(洪宗彦), 김석윤(金錫潤), 고군찬(高君燦), 고병효(高柄孝), 고훈범(高薰範)과 같은 직원들이 기업인으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영철학을 습득하여 실행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직원들이 사업가로 독립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여 주었다. 이 때문에 박종실상점에 근무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익은 혼자 차지하면 안 되는 것이야. 고루 나누어 가져야 하지. 사업도 만찬가지로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조금씩 남겨서 많이 팔아야 되지. 박리다매가 좋아(利不可獨食).

 

박종실은 합리적인 경영과 신용을 기업경영의 생명으로 생각하는 이불독가식(利不可獨食)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상품거래에 있어 생산자, 도매업자, 소매업자, 일반소비자 등 모두에게 합당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했다. 대량판매를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국내 생산품은 생산자와 직접 연결시켜 주었으며, 수입처를 다각화하면서 안정적으로 공급을 받기 위해 특약체결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한편 박종실은 근대적 경영기법을 실천하며 기업을 성장시키고 부를 축적하는 한편 돈을 벌면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의 사회적 윤리를 실천하였다.

 

박종실은 1957년 어려운 시기에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불우한 청소년을 위하여 사재를 기꺼이 내놓고 문화시설이 전혀 없는 제주지역에 도서관을 건립하였다. 당시 제주도에는 1956년까지만 해도 그러한 기능을 띤 공공도서관이 전혀 없어서 시민들의 학습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박종실은 제주지역의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높은 뜻을 세우고 1957년 제주시 삼도1동 235-25번지의 토지(부지 : 310평, 건평 : 1173평)를 매입하고 그 곳에 본관건물을 신축하여 동년 6월 1일 제주도에 기증함으로써 제주도립도서관이 탄생하였다.

 

그는 도서관을 세운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녀와 손자들에게 서적을 수집하여 기증하도록 독려하고 이에 감화를 받은 외손녀 고경신(고광림 박사의 딸)이 미국에서 용돈과 장학금 등을 모아 3천여 권의 장서를 기증한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뿐 아니라 1962년에는 그가 재학하고 있던 고등학교에서 제주도 학생들을 위하여 도서를 수집하여 총 700여권의 영문서적을 제주시립도서관에 보내왔다.

 

이 외에도 1965년 11월에는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하여 이들이 시간을 보내며 즐길 수 있는 안식처인 경로당 청암정(晴岩亭)을 건립하여 제주시에 기증하였다. 또한 1968년 6월에는 박종실의 1주기를 맞이하여 고인의 유지에 따라 3형제(박경훈, 박태훈, 박충훈)가 재단법인 청암육영회(晴巖育英會)를 설립하였다.

 

1966년 6월, 박종실이 82세로 타계하자 관덕정 광장에서 어려운 시기에 근대적인 기업을 일으켜 부를 축적하고 그 일부를 사회에 환원했던 그의 기업가윤리를 추모하는 제주 최초의 사회장(社會葬)이 치러졌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2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