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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 탐라 성주·왕자의 탄생과 문가(文家)의 입도 배경

1980년대 교사시절 말띠이며, 말의 고장 남원읍 출신이고, 말하기 좋아하는 12년 선배 교사와 나는 입씨름을 하였다.

 

‘저는 이래 봬도 탐라왕자 손 이우다. 제주에서는 고씨가 성주를, 문씨가 왕자를 했덴 햅디다. 책에도 경 써 있고 마씸.’이라고 하자, 제주에 무슨 왕이 있고, 왕자가 있느냐는 것이다. 제주에 왕은 있었지만, 왕 대신 성주라 칭했고, 필자가 말하는 왕자는 왕의 아들이 아닌, 세습적인 벼슬이름이라고 말했으나, 상대방을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음 날 관련서적을 보여주어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만치 왕궁이 없는 제주에선 역사도 사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에, 우리의 논쟁은 싱겁게 끝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로 된 성을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성을 가진 사람보다 성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게다. 조선 초기에는 양민도 성을 가질 정도로 성씨가 보편화 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은 조선 후기에도 성을 쓸수가 없었다.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 시행으로, 누구나 성과 본을 가질 수 있도록 비로소 법제화 되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씨는 5582개, 본관은 3만6744개로 조사되었다. 한자가 있는 성은 1507개고, 없는 성이 4075개다. 한자가 없는 성씨는 하질린, 쓰룬, 추옹, 호이 같이 귀화한 외국인 성씨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10대 성씨로는 김·이·박·최·정·강(姜)·조·윤·장·임이고, 제주 10대 성씨로는, 김·이·고·강(姜)·박·양·오·강(康)·최·정· 문이다.

 

남평 문(文)씨를 쓰는 인구수로는 전국적으로 20위 전후이지만, 유독 제주에는 10대 성에 낄 정도로 많음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문씨가 제주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12세기 탐라시대부터다. 탐라라는 명칭이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말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제주도를 주호(州胡), 도이(島夷), 탁라(托羅), 동영주(東瀛洲), 섭라(涉羅), 탐모라(耽毛羅), 탐부라(耽浮羅), 모라, 담라, 탐라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島)를 섬이라 하듯, 탐(耽)·담(儋)·섭(涉) 등의 음이 섬과 흡사하여, 도국(島國) 즉 섬나 라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3세기 경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에 기록된 내용이다.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이 있는데 주호라 한다. 그 섬사람들은 체구가 작고 언어는 한(韓)나라와 다르며, 모두 머리를 짧게 깎아 선비족과 비슷하다. 가죽옷을 입었는데 윗도리만 입고 아랫도리는 없어 마치 벗은 모양과 같다. 소와 돼지를 잘 기르고 배를 타서 한(韓)나라와 중국과 왕래하며 장사를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선덕여왕(645년)때 자장법사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는데, 이는 신라를 위협하는 주변 9개국을 제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겠다는 염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주변 9개국(중국, 일본, 오월, 거란 등) 중 4층에 언급되고 있는 나라가 탁라(托羅)인데, 이는 탐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조선이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에 조공을 받쳤듯, 탐라국은 백제에 이어 통일신라에 조공을 받쳤다. 백제에게는 476년(문주왕 2년)부터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여, 백제가 멸망(660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라와는 662년(문무왕 2년)부터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후 8세기부터 조공관계로 꾸준히 교류하였으며, 일본과 당에도 사신을 파견하였다.

 

제주선인들의 삶은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같이 결합될 때 더욱 알찬 교훈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사실(fact)이라는 단어와 허구(fiction)라는 말이 합쳐진 역사적 허구(faction)라는 말이 드라마를 중심으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를 두고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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