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진관훈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8) 노동력 부족을 메꾼 작물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고구마는 학명을 lonmoesaBattas라 하야 선화과(旋花科)의 다년생 초본이오. 원포(園圃)의 경작물인 것이니 그 원산지에 대하야 제설(諸說)이 잇스나 중앙아미리가(亞米利加)의 소산인 것을 콜롬보가 신세계 발견 후 토산(土産)으로 서반아(西斑亞)로 지래(持來)하야 구주(歐洲)로 아세아 제지(諸地)로 전파된 것이라.

 

고구마가 조선에 들어온 것은 무론 오래지 아니한 일이다. 본대 서반아인의 손에 인도양을 지나서 마닐라, 몰루카, 말레제도(諸島)로 전파되고 갱진(更進)하야 중국, 대만, 유구(琉球), 일본 등 차서(次序)로 동양에 전한 것이니까 이다음에 조선으로 유입하엿슬 것은 분명하지마는 그것이 일본에게 선지 중국에게 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려운 일이다(1925. 12. 12. 동아일보).

 

고구마는 감저(甘藷)·조저(趙藷)·남감저(南甘藷)라고 하며 1763년 조엄(趙曮)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던 중 대마도에 들러 그 종자를 얻어 동래와 제주도에서 시험 삼아 심게 한 데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감저(甘藷)는 영양가치와 생산가격 기타 경제상으로 보드래도 미맥(米麥)에 다음되는 중요한 국민적 식량으로 곡류가 부족한 때에 응급식곡(食穀)으로 극히 적당할 것이다(1924.12.08.)

 

고구마는 제주지역 기후풍토가 재배에 적합하며 대용식량은 물론 절량기(絶糧期) 구황(救荒) 작물이었다. 또한 주정(酒精), 전분(澱粉)의 원료로 판매할 수 있어 유용한 작물이었다. 무엇보다 연중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태풍피해로 인한 절량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 매우 유용한 작물이다.

 

감저(甘藷)는 공업용 또는 식료용으로 전시 하에 잇어서 중요시되고 잇는데 특히 조선에 잇어서는 감저재배에 천후적(天候的) 지질적 혜택이 만코 원래가 재배에 특별한 기술을 불요(不要)하고 생산비가 적은 점이 잇으므로 총독부 농촌진흥과에서는 내년부터 십오만원의 보조금을 교부하야 적극적으로 증산을 수행하기로 결정되엿다고 한다.

 

감저증산은 공업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지마는 농가수지관계로 보다 영양가치로 보나 퍽 유리한 작물로서 맥(麥) 일단보작과 감저 일단보작과를 비교하면 그 영양가에 잇어서는 카로리로 계산되야 사배나 감저가 만코 그 수지관계로 보면 일단보(一段步)에 감저는 평균 이백관 생산으로 금액으로는 단당 십원이 되는데 반(反)하야 맥은 단당 구원가량 밧게 아니 되여 양방으로 다 유리하다고 한다.

 

종저(種藷)에 잇어서는 종래 일본 내지에서 연 오백만관의 이입이 잇엇고 식료로 상당한 이입이 잇엇는데 일본 내지산(內池産)은 여러 가지 병해가 잇어서 만흔 지장(支障)이 잇을 뿐 아니라 제주도산 감저만 가지고도 조선내 종저 배급은 무난하다하며 현재 조선산량은 오천삼백만관에 달하고 잇으나 금후의 산액(産額)은 놀날만한 바가 잇으리라 하야 자못 주목하고 잇다(1938. 12. 06. 동아일보).

 

19세기 말부터 제주지역에 고구마 재배가 이루어져 왔지만 특히 1930년대 급속히 재배가 확산되어 제주농가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재배면적은 1913년 599.8ha에서 1938년에는 7,357ha로 늘어났고 생산량도 1913년 1,850,143관(단위 면적당 308.5관)에서 1938년 23,430,000관(단위 면적당 318관)으로 증산되었다.

 

이러한 고구마의 증산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 증가보다 재배면적의 확산에 기인한다. 또한 타 작물에 비해 노동력 투입도 적은 편이었고 전량 수매되었기 때문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고구마 재배를 확대한 것이다. 아울러 고구마가 다른 작물에 비해 수확기인 8월말 9월초에 제주에 불어오는 태풍의 피해를 덜 입어 구항작물로 기여하는 바가 컸고 절간고구마로 가공되어 주정원료로 반출 등 소비와 판매에 아주 유리한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분으로 가공하고 난 잔여물은 축산사료로 쓰이거나 소량은 비료로 사용되기도 하여 재배가 확대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정원료인 전분 공출을 늘려 군수물자를 확보하려는 일제의 의도가 있어 고구마 재배가 확대된 것으로 여겨진다.

 

총독부의 제주도개발정책에 기(基)한 감저를 원료로 하는 무수주정제조계획(無水酒精製造計劃)에 대하여는... 원료인 감저는 제주도가 그 공급지로서 가장 적당하고 동도(同道)의 맥작(麥作)을 감저재배에 전환 시킬 것(1938. 06. 03. 동아일보).

 

연액 이천만관의 원료 수획(收獲)을 목표로 하고 잇는 본도에서는 거(去) 십사일부터 전도 관민 총동원하야 비상히 긴장한 기분속에서 감저 식부(植付)를 일제히 시행하얏는데 무수주정공장(無水酒精工場) 본도 설치 성부(成否)는 이십여만 도민의 생명선인만큼 그 성적이 매우 양호하고 월말까지는 전부 종료되리라고 예상되는바(1938. 07. 01. 동아일보).

 

일제는 제주지역 고구마 증산을 위해 1937년부터 ‘고구마증산장려계획’을 수립하고 휴한지 등에 재배면적을 늘여 나가는 노력을 하였는데 이는 주정원료인 전분공출을 늘려 군수물자를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이 때문에 총생산의 40% 이상은 주정의 원료가 되는 절간고구마로 가공되어 공출(供出)되고 나머지는 도내에서 소비되었다.

고구마는 일제강점기 제주농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식량확보를 위한 주곡작물 위주의 단작농업에서 고구마로 식량을 대체하게 됨에 따라 재배작물의 다각화가 가능해지고, 그 대신 현금을 얻을 수 있는 상품작물, 환금작물의 재배가 확대된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고구마는 타 작물에 비해 태풍피해가 적고 노동력 투입도 적은 면이어서 해녀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해녀들은 물질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밭을 매입한다. 그러나 ‘땅부자 일부자“라는 속담처럼 도일(渡日)로 제주지역 노동력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남아있는 여성노동력(해녀노동력)만으로 늘어난 밭에 농사지을 수 있는 것이 고구마였다. 즉 여성노동력 강화로 노동력 부족을 메꾸며 경작 가능한 작물이 고구마 였다는 것이다.

 

재작년에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고구마로드’를 따라 제주에 왔었다. 고구마의 이동과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고구마 원산지에서 출발하여 제주도를 거쳐 부산 등지에서 고구마 재배의 유래와 역사, 농업사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의미를 현장 조사하기 위해서다. 고구마를 단순히 재배작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고구마에 얽힌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일종의 구술사적 방법으로 정리하고 기록하려는 것이다. 민족감정을 떠나 부러운 일이다.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마을마다 있었던 전분공장, 감저구덩이, 빼땍이(절간고구마), 끈적거리던 구마 등은 아른한 향수이며 살아있는 기억이다. 우리도 이 기억을 쫓아 제주에서 출발하는 감저로드를 찾아 떠나야 할 시점이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2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