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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초·중 교장 문영택, 책 펴내고 40년 교직 마무리 이색 퇴임

 

 

"우도 아이들에게 꿈을 불어 넣어주고 싶었죠.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네요.“

 

지난 25일 오전 11시 '섬속의 섬' 우도초·중학교. 1년 여 이 마을에서 교장으로 활동했던 한 선생님의 퇴임식이 열리고 있었다.

 

부임 직전 도교육청 교육국장을 지낸 인물이란 것도 그 시절 파격이었지만 이날의 퇴임식 역시 책 한권과 동반한 자리였다. 출판기념회 및 퇴임식이다.

 

주인공은 문영택(63) 교장.

 

그는 정년퇴임을 1년 여 남기고 외딴 섬 우도행을 자청했다. 우도초·중 교장 자리다. 의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내 강순옥(62) 씨는 반대했다. "아이들도 일과 학업 때문에 집에 없는데 왜 혼자 두고 가려고 하냐?"고 따졌다. 그는 "학교에 가서 마지막 교육의 뜻을 펴 보고 싶다"고  아내를 설득했다. 같은 교사이기에 아내는 그의 선택을 이해했다. 

 

 

 

40여 년간 교직에 몸 담으며 평교사와 교육전문직을 넘나들었던 그는 교육청 최고위직 반열에까지 올랐다. 그런 그이기에 그의 우도행은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작은 만족을 찾는 그런 학교를 만날 수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제주시내에 있는 큰 학교보다는 여태까지 가보지 않았던 우도 학교를 가면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아이들과 함께 정다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의 고향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고향과 머지 않은 곳 섬이란 것도 그가 우도행을 서택한 이유다.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로망’이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다. 공주사범대를 지원했다. 과를 선정하는 게 문제였다. 처음에는 영어과, 국사과, 일반사회학과 중에 고민했다. 결국 가장 자신 있었던 프랑스어과를 선택했다.

 

충남대 교육대원을 졸업하고 1977년 교직에 입문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를 시작으로 제주일고와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에서 20년 동안 평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탐라교육원과 제주도교육과학연구원에서는 파견교사, 제주시교육지원청과 제주도교육청에서는 장학사로, 장장 13년 간 교육전문직으로 활약해 왔다.

 

2006년에는 다시 평교사로 애월고에 발령되는가 하면, 2009년부터는 제주도교육청 장학사, 중문고 교감, 제주도교육청 장학관, 한림공고 교장 등 일선 학교와 교육청 본청을 바삐 오갔다.

 

기막힌 현실과 마주하기도 했다. 한림공고 교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수학여행 가는 나들이 기회를 미루고서 학생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달고 '한수풀 역사순례길'을 찾았다.

 

 

 

순례길 작명 사연도 전했다. “세월호 비극은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에 일어난 남영호 사건이 떠올랐죠. 그 당시 사건이 명확히 규명됐으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 과거의 뼈아프고도 슬픈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학생과 교직원들이 함께 개척하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2014년은 그에게도 힘든 해였다. 평소 좋아하던 사이클로 제주를 누볐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은 호젓한 오솔길과 고지대에 위치한 굴곡진 곳을 달리는 게 그만이 치유 시간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발목질환. 주말마다 고지대를 산악용이 아닌 자전거로 달렸던 후유증으로 걷는 것 마저 힘들 정도로 발목에 무리가 왔다. 발목 연골이 닳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결국 전신 마취를 하고 연골 수술을 받아야했다. 이제 50살 때부터 즐겨타던 사이클은 이제 10년 만에 그의 손을 떠나게 된 운명. 수술 후 사이클에 관련된 모든 장비를 수리했다. 학생들에게 경품으로 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재직하던 한림공고에 잔디구장이 처음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먼저 사용해야 하니 체육대회를 열었죠. 체육대회 재미를 위해 여러 경품을 만들었고 그 중 최고 경품으로 사이클 장비 일체를 내놓았죠”

 

쑥스러운 듯 웃었다. 평소 뭔가를 개척하길 좋아했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걸 좋아하는 그다.

 

그의 이런 성향은 우도에 와서도 빛났다. ‘우도탐험대’를 만들고 우도를 학생들과 함께 개척해 나갔다. 역사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던 그는 아이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힌트를 얻었습니다. 부종휴 선생님이 ‘꼬마탐험대‘를 조직해서 짚신 신고 횃불을 들고 만장굴을 발견했죠. 부종휴 선생님의 일대기를 읽고 이런 선인이 있었기 때문에 만장굴의 신비도 벗겼는데...우리 아이들에게도 도전정신을 길러주고 싶어 ’우도탐험대‘를 만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방향을 잡지 못해서 아이들과 같이 탐험에 나섰다. 탐험을 나서면서 방향성을 같이 생각했다. 그렇게 우도 곳곳을 같이 다니다 보니 표지석과 안내판이 잘못된 곳을 발견했다. 아이들에게 표지석과 안내판이 잘못된 것을 설명하고 "우리의 손으로 바로잡아나가자"고 제안했다.

 

한 학생이 전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역할부담을 해서 우도에 있는 표지석과 안내판을 전부 스마트폰으로 찍어왔다. 그것을 한글파일로 전환하고 선생님들과 공유해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면 그것을 학생들이 고쳐서 ‘우도탐험대가 들려주는 우도이야기’ 책자로 내놓은 것이다

 

“사실 저는 방향을 이끌어줬을 뿐. ‘우도탐험대가 들려주는 우도이야기’는 우리 학생들이 제목도 붙이고 스스로 탐험한 우도 역사·문화, 관광안내를 담은 책이죠.”

 

 

이제 그는 4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갈 생각이다. 어른에게도 장래 희망이 필요하다는 그는 10년 전부터 명함에 ‘향토해설사’를 적어 넣었다.

 

향토해설사로 우리 제주를 제대로 잘 알리고 싶다는 그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향토해설사 말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향의 어르신들과 또 친구들과 함께 고향을 돌보며 살고 싶습니다. 작은 무화과 농장도 10년 전부터 준비했어요. 농사도 짓고 마을에 봉사도 하면서 다체로운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끝까지 아이들을 걱정하는 그다.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른이 모범이 돼서 좋은 본을 보이면 우리아이도 바르게 큰다고 믿어요.”

 

과거가 있어 오늘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그는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줘야한다고 말한다.

 

발이 닳도록 그가 페달을 밟으며 달렸던 기록이 이날 퇴임식의 하이라이트였다.

 

그가 퇴임을 맞아 펴낸 책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도서출판 각)은 그런 발로 뛴 역사의 기록이다. 할아버지가 아니면 할머니가 손자에게 옛날 얘기하듯 알려주는 '스토리'다. 

 

그가 교단에서 내려오면서 세상 제자들에게 내민 마지막 교육지침서다. [제이누리=김리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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