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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훈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6) 제주기업 역사, 자수성가형 기업가 표본

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경제학·사회복지학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의 ‘제주근대경제사 신문읽기’입니다. 비록 지금의 경제시스템과 여건이 구비돼 있다하지만 제주 역시 과거의 실타래가 얽히고 설킨 땅입니다. 기업과 산업이 척박했던 제주에도 그 맹아가 등장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사회와 경제상황을 살핀 ‘신문’을 통해 그 시절의 기업·경제가 지금 우리 제주의 삶과 어떻게 연관·연동되고 있는지 가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 최초의 상점, 즉 소매점은 1905년 8월 제주면 일도리(현 제주시 일도동)에 개점한 박종실상점(朴宗實商店)이다. 박종실상점은 초기에는 일상에 필요한 잡화를 취급하는 소매상점이었으나 점차 제주도내에서 잡화류 소매상을 벗어나 근대적 종합무역상사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대표적인 제주 토착 자본으로 자리 매김했다.

 

박종실은 1885년 5월 4일(호는 청암(晴巖), 본관은 밀양) 제주시 이도동에서 부친 박원길(朴元吉)씨와 모친 탐라최씨((耽羅崔氏)의 3남(宗實, 宗學, 宗熙) 1녀(宗順)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5살 되던 해 부친을 따라 큰 댁이 있는 전라도 부안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큰 댁의 형제들과 한학을 공부하며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12세 때 다시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 내려온 뒤 목포 등지로 장사 길에 나선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장사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성냥, 양초, 실, 바늘, 창호지 등을 공급하는 소규모 소매업에서 출발하여 행상을 다니면서 모은 돈을 밑천 삼아 18세 되던 해 매입한 보도반점(寶都飯店)(현 제주시 칠성로) 자리에 일상소모품 등을 판매하는 상설 소매상점을 개설했다.

22세에 모친을 여의고, 얼마 뒤 진주 강씨(晋州姜氏)와 결혼한 박종실은 제주읍 서문골 갑부 조덕삼(趙德三)으로부터 어머니가 생전에 맡겨두었던 60원을 받아 이를 밑천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제주에는 식량뿐만 아니라 면직물, 의류품, 기계류 등에 이르는 모든 생필품을 외지로부터 이입(移入)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대부분의 상권은 일본인 상인에게 있었다. 그나마 제주에서 생산되어 육지로 이출(移出)되던 해산물, 소가죽, 한약제 들 역시 일본인 중개인의 손을 거쳐야만 거래가 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종실은 지역상권의 탈환과 민족자본의 형성을 위해 당시 일본인 독점이던 제주상권에 도전장을 내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제주도내 상설 점포 현황을 살펴보면, 거래 품목은 잡화, 식료품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영업장소는 제주읍 지역이 가장 많았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에 가장 활발히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특히 1930년대 주류판매 및 생산, 보험업, 금융업, 제조업 등이 생겨나고 지역적으로도 한림, 김녕, 모슬, 서귀 등지로 확산되었다. 이들 지역의 특징은 항구가 있어 일본과의 거래가 활발한 지역이며 일본인 거주, 일본인 공장, 일본인 어업 생산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초기 상설점포는 제주도 농촌의 구매력을 겨냥하기 보다는 일본인, 혹은 일본과의 교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소비패턴이 달라진 계층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종실은 1931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주요도시순회좌담(主要都市巡廻座談) 제주(濟州篇)’에서 다음과 같이 제주산업발전 방안을 피력했다.

 

직조업(織造業)도 조흘것입니다만 대개(大槪) 산업(産業)이 발전(發展)하랴면 그 원료(原料)가 풍부(豐富)하여야 하는 것이니까 제주(濟州)에서는 가장 대량(大量)으로 생산(生産)이 되는 대소맥간(大小麥稈)을 이용(利用)하야 그것으로 모자(帽子)등(等)의 수공품(手工品)을 맨드는 것이 조흘가 함니다. 그러케 하랴면 각면당국(各面堂局)이 각지(各地)에 장려(獎勵)하고 판로(販路)를 구(求)하야 주지 아니 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연사오만원(年四五萬)의 수입(收入)은 잇슬 것을 확신(確信)함니다 그리고 목축업(牧畜業)도 상당(相當)히 유망(有望)함니다 마는 우마(牛馬)이외(以外) 다른 가축(家畜)은 조금도 여망(餘望)이 업슴니다.

 

제주(濟州)에서 생산(生産)이 되는 주류(酒類)의 원료(原料)로 대소맥(大小麥)만으로는 대단(大端)히 부족(不足)함니다. 만일(萬一) 제주(濟州)에서 다량적(多量的)으로 생산(生産)케 하면 얼마든지 충분(充分)한 원료(原料)를 어들 수가 잇슬 것입니다. 그리고 원료(原料)생산자(生産者)와 주류(酒類) 제조업자간(製造業者間)에 일정(一定)한 계약(契約)이 잇서야 될 줄 암니다(1931.01.25. 동아일보).

 

이처럼 박종실은 여러 사업에 다각적 경영을 도모하면서도 언제나 박종실상점에서 구심점을 찾고 여타 부적절한 이권사업에는 손대지 않았다. 당시 제주도에서 특산물을 가공하는 회사가 적지 않았지만 박종실은 제조업에 진출하지 않았다.

 

1922년 박종실은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해운업에 손을 대면서 본격적으로 근대적 기업활동을 하였다. 또한 1925년 제주전매서 개설에 참여하여 초창기 전매서 발전에 참여했고, 제주도에 자동차가 등장하자 강성익(康性益), 최윤순(崔允淳)등과 함께 1925년 제주통운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해상교통뿐 아니라 육상교통 발전에도 공헌했다.

 

1931년에는 상품판매의 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밀가루, 설탕, 소주 등을 주요 품목으로 취급하는 제주상사조합을 설립하고 초대조합장에 취임했다. 이 조합은 1935년 제주상사주식회사를 발기하여 법인회사로 되기까지 적지 않는 애로를 겪었지만 제주상사주식회사를 해산한 후 삼일해운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취체역(取締役)으로 취임하고 이후 제주상사조합은 제주상사주식회사로 개편되었다.

 

박종실은 제주상공인의 친목과 단결로 당시 제주지역의 상공업상 폐해를 교정하고 상권의 옹호와 발전을 위하여 제주상공회를 설립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제주도내 상공인의 권익옹호를 도모하려 했던 제주상공회는 지역 상공인들의 관심부족으로 권익옹호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939년 박종실은 삼일해운주식회사를 제주상운주식회사로 개편하여 사장에 취임하고 1940년 4월에는 제주도생활필수품상업조합을 설립하여 조합장에 취임하였다. 그 후 1945년 4월 일제에 의해 소개령이 내려지자 제주에서의 기업활동을 마감하고 전남 나주로 이주하였다가 해방 직후 제주로 귀환하였다. 이상에서 간략히 소개한 제주상선주식회사(1922년), 제주상사주식회사(1935년), 제주상운주식회사(1939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해방 이후 박종실의 경영성과와 사회적 공헌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박종실은 한말의 혼란기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의 혼란기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기업가로서 일생을 보냈다. 그의 50여 년 동안의 기업활동은 제주도 기업의 역사이며 그는 제주도에서의 자수성가형 기업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박종실의 어록(語錄) 한편을 소개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하늘의 뜻을 따르면, 관청도 맑아지고 백성도 스스로 안심하게 되고, 처가 어질면 남편이 화를 입는 일이 적을 것이고,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가 관대해 진다(國定天心順 官淸民自安 賢妻夫禍少 子孝父心寬)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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