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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범 전 지사의 시국강연 단상 … 공감 없는 사감의 도그마

 


6일 오후 2시 제주시 조천읍 제주항일기념관. ‘자유·법치·사회 회복을 위한 시국강연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입구에 펼쳐져 있다. 

 

강연장에는 ‘행주치마 의병대’라고 적힌 태극기를 둘러매고 한 손엔 태극기를 든 이들로 가득했다. 족히 100여명은 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분위기도 있었다. 그들과 거리를 두고 마치 대치하듯 그 반대편에는 ‘3·1영령을 욕보이지 마라’. ‘항일정신 산교육장에 이념논쟁 웬말이냐’라고 적힌 피켓을 든 제주4·3유족회와 시민단체 회원들.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며 “신성한 이곳에서 지금 무얼 하려 하느냐”며 고성이 오고 갔다. 급기야 서로에겐 욕설과 막말이 오갔고 일부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편이 든 피켓을 부수고 어깨를 밀치는 등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0여분 뒤 자리가 정돈됐다. 애국가를 부르며 본 행사가 시작됐다. 당초 예정됐던 ‘스마트폰 활용 강연’은 강사의 불출연으로 취소됐다.

 

이어 서경석 목사의 시국강연이 이어졌고 그 다음 마이크는 관선 지사와 초대 민선 지사를 지낸 신구범 전 지사에게로 넘어갔다.

 

신 전 지사는 묵묵히 연단에 올랐다. 그의 화두는 “현 시국은 진실과 거짓, 참과 거짓의 싸움”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제주도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인해 개발되기 시작했다”며 “얼마 전 원희룡 지사를 만나 ‘5·16도로 명칭 변경 찬성하는 이들이 있는데, 변경되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5·16도로 명칭은 역사”라며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역사이고 감귤 나무를 심게 된 것, 어승생수원지 조성하게 된 것, 삼다수를 개발하게 된 것도 모두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신 전 지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는 자유와 법치”라며 “자유민주주의 통치 이념을 지키기 위해선 의병대를 꾸려 남북전쟁을 해야 한다. 남북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아닌 남한 안에서 일어나는 남북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탄핵이 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은 이미 신 삼국지”라며 “한반도 내에서는 북한·탄핵 인용파와 탄핵 기각파로 나뉜다. 우파나 좌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차피 전쟁은 시작됐다. 긴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늙었지만 나라를 위해 싸울 용기는 있다”며 “나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의병대에 들어오는 게 겁난다면 지금이라도 빠져도 된다”고 덧붙였다.

 

태극기를 두른 이들의 환호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그러나 강의장 뒷편에서 묵묵히 이를 지켜보던 유족회와 시민단체 회원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신 전 지사의 연설을 듣던 일부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연출했다.

양윤경 4.3유족회장은 더 당황스런 눈치였다. 그는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신 전 지사의 러닝메이트로 서귀포시장으로 출마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그가 모시고자 했던 '도백'의 발언은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항일기념관에서의 신 전 지사의 발언은 사실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신 전 지사는 지난해 12월 중순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박근혜 대통력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이 탈당 사유였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이후 더민주당의 점령군 행태에 실망해 탈당한다”고 그 사유를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와 더민주당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비록 그는 더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당선자이자 소속 정당이 다른 원희룡 새도정의 인수위원장 제의를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당 제주도당은 신 전 지사에게 위원장직 거절을 요구했으나 신 전 지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수락했다. 당시 신 전 지사는 “제주와 제주도민이라는 큰 목표 아래 선배 도지사로서 역할을 고려, 원 지사에게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비록 정당과 정파 측에선 곱지 않은 시각이겠지만 제주도민으로선 정파와 정당을 초월한 '도민통합'의 큰 행보로 비쳐졌다.

 

물론 그 결과 신 전 지사가 얻은 건 불편한 현실이었다. 새정치연합당 도당은 2014년 6월 10일 긴급 집행위원회를 열고 신 전 지사에 대해 ‘해당(害黨) 행위’를 이유로 당원자격 정직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이런 사감(私感)이 작동한 결과라고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발언에 공감(共感)할 이들이 이젠 너무도 극소수란 점이다. 오히려 그의 발언으로 그동안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그를 지지했던 인사들은 '분노'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신 전 지사의 장남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7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아버지 강연으로 충격받았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아버지를 동지로 믿고 아버지 당선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이 정말 힘드실 것 같습니다. 그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아버지가 아들을 이길 순 없다. 물론 아들 역시 아버지를 이길 순 없다. 다만 이제 한 원로정객이 쓸쓸히 역사에서 퇴장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한 시절 추억이 한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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